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그래,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강’)
말하자면, 이 시만큼 삶과 사랑에 치열하고 따뜻한 시를 보지 못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강가에서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어깃장을 놓는 시인의 마음이 진심일지라도 나는 이 시가 왜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서로의 바닥을 보여준다는 것.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몇 명이나 만날까. 어처구니없는 삶과 더 어처구니없는 사랑이 이렇게 처참하게 우리를 때릴 때 그러니 당신, 우리 강가에 가서 실컷 말하고 통쾌하게 울자. 혹시 마주치더라도 절대 눈은 마주치지 말자!
이 시를 쓴 인숙 씨는 정이 많고 따뜻한 시인이다. 문단의 한참 선배를 인숙 씨라 말하는 건 무례하겠지만 두해 전 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문인은 ‘쪼다’ 같다거나, 인터뷰를 하면 없는 밑천까지 보여야 하니 손해 보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억울하게 당하거나 손해 보더라도 시인 황인숙은 모든 것에 솔직하고 따뜻했다. ‘<동사서독>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당신은 내 옆에 없었더랬죠’ 이런 대사가 사람을 홀린다’고 했던 인숙 씨! 아름답고 쓸쓸하다는 말을 가장 멋지게 할 줄 아는 시인이다.
차라리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고, 이 순간을 정직하게 부서지고 정직하게 무너지자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다. 가난한 나의 언어가 당신이 미쳐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마음에 닿을 리 만무할 테고 그냥 모르는 척 있다가 ‘그래, 다시 돌아왔구나’ 기다렸던 말을 해줄 뿐. 오늘 오후 화장실에서 마주친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작은 화분을 주고 간 그녀의 말없는 뒷모습이 오래도록 먹먹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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