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폭목(暴木)’과 ‘불량목(不良木)’
칼럼-‘폭목(暴木)’과 ‘불량목(不良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22 18:2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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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폭목(暴木)’과 ‘불량목(不良木)’


인간의 고향은 자연이기에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힘들 때는 자연으로 돌아가 보자. 구름 속에도 밝은 태양은 항상 떠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자신을 구름 속을 벗어나 밝은 빛으로 인도하여, 답답한 가슴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살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는 것은 최상의 행운이다. 수행자들은 건강해야만 공부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건강관리와 마음공부에만 열중할 뿐 외부경계를 바꾸려들지 않는다. 특히 육신을 보온하는 첫 관문이 목이어서 목 관리를 잘해나가면서 추우면 옷 하나 더 껴입고 더우면 하나를 벗는다.

춥다고 난방부터 켜거나 덥다고 냉방기부터 켜면서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물도 고이면 썩고 인간도 몸과 마음을 자주 환기시켜주지 않으면 병이 들고 만다.

물이 썩으면 생태계는 물론 인간도 병들게 되므로 수시로 자연과 더불어 건강관리를 해나가 보자. 절에서는 1년에 한두 차례 방생기도나 삼사순례를 통하여 외부교육을 실시한다.

신도들은 가정과 법당을 벗어나 넓은 공간에서 육신을 마음껏 움직이고 활동을 하면서 신이나지만 스님에게는 비상이 걸리는 날이 된다. 나이 많은 분들은 차량이나 계단 같은 곳에서 사고발생 가능성이 많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의 견학학습은 법당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외부환경에서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중요한 영역이라 제외할 수가 없다.

자연 속을 거닐며 외부세계를 직접 눈으로 보아야 만물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가엽게 여기는 마음에 있기 때문에 동행한 노약자들을 애지중지 보호하며 함께 호흡한다. 우리는 코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고, 입으로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냄새나는 똥을 싸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

공부를 하는 것은 밥은 귀하고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평등한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반경을 넓혀주어 차별심을 없애고 나면 자신에게만 집착하던 마음을 남을 배려하는 성숙함으로 성장시켜줄 수가 있다. 중국은 나라가 크고, 한국은 나라가 작다.

그렇지만 두 나라가 서로 평등하게 존중해주며 살아가야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인격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포용해야 하며 차별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야한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남과 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 간, 잘나고 못난 것 없이 모두 평등하다. 서로 구별하거나 분별하지 말자. 분별하고 차별하는 데서 충돌음이 생기고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선어록에 ‘방목불입원규(方木不入圓窺)’라는 명구가 있다.

“둥근 구멍에는 네모난 나무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으로서 사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사리에 맞게 살고 더불어 사는 길로 나아가자. 갑질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

산속의 숲속에는 ‘폭목(暴木)’과, ‘불량목(不良木)’이 있다. ‘폭목’은 인간사회의 폭력배 같은 나무이며, ‘불량목’은 인간사회의 자질 없는 인간 같은 나무로서 제거되어야 할 나무이다. ‘칡’은 질긴 덩굴성 줄기와 커다란 잎으로 주변의 모든 공간을 모조리 점령하며 무서운 속도로 번창해 가면서 주변 초목들의 목을 조르고 압박하여 죽게 만들어버린다.

갑질 하는 자들은 다수의 약자들을 강제하고 억압하며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구축해온 불량 목 같은 인간들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줄도 모르고 자기만 내세우는 독심(毒心)으로 사회를 더럽힌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서 서로를 배려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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