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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박재표(朴在杓)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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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3  19: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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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박재표(朴在杓)

박재표 선생은 진주시 나동면 삼계리에서 통정대부 비서감승 박주형(朴周衡)의 차남이며 1886년 11월 2일생이다.

박재표 선생은 진주고, 진주여고를 처음 설립할 때 발기인 겸 초대 이사장(1921년 11월)으로 교육을 통해 항일운동을 펼치고 진주고 초대 기성회장이었던 박재호(1869 ~ 1925년)의 아우이다.

박재표 선생은 진주청년회가 창립될 때 공을 세우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진주청년회 위원장, 의장(1920년 7월 ~ 1926년 12월)으로서 애국계몽의 주역이었다. 그는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발기인 겸 이사, 감사(1922 ~ 1923년)로서 1만 4천 평의 땅을 기증하여 오늘날 학교가 그 터에 있다.

1921년부터 경남도청이전 방지동맹회 상경진정위원으로 활동했다. 동아일보 주최 조선 교육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1921년 4월) 일신여고 고문(1925년 7월)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남해 충렬사(忠烈祠)가 퇴락하여 차마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중건을 위해 후원회를 결성케 하고 새로 단장하였다.(1932년)이 때 중건된 내용과 후원자 명단이 충렬사 입구에 현재도 현판형식으로 걸려있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계동과 매립지 사이의 운동장터도 박재표 선생이 5년간 무상제공했다가 뒤에 한번 사용요금 5원씩 받았다. 이는 청소년이 건강해야 나라가 발전하고 민족도 존속하다고 말하였다.

민족유일의 단일당 신간회가 창립되자 진주지회 설립자금을 제공하고 지회장으로 추대되었다.(1927년 10월)
경남도청이전 방지회 상경진정위원이 되어 활동하고 나동초등학교 설립기금을 기부하여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1년 8월 7일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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