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용암사지의 초파일
진주성-용암사지의 초파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24 20: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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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용암사지의 초파일


거리 곳곳에 석가탄신을 봉축하는 연등이 내걸리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하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용암사지의 석좌불이 있다. 머잖은 곳인데다 절집도 없고 상주하는 스님도 없는 폐사지라 언제든지 마음이 울적할 때면 무시로 찾는 곳이다. 그러나 초파일 오전에는 선대부터 다니면서 신심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절부터 먼저 들렸다.

초파일 봉축행사가 절집마다 제일 큰 행사인데 이따금 녹차를 함께 마시는 스님들의 절집은 인사치례라도 해야 하는 부담감에 초파일전에 미리 가서 등을 단다. 더도 덜도 아닌 오롯한 인사치례이지만 이리라도 해야만 머릿속은 편찮아도 마음속이 가볍다. 오후 느지막하게 용암사지의 석좌불을 찾았다. 연등하나 걸리지 않고 인적 없어 고요하고 적적하여 쓸쓸하다. 이산저산 골짜기마다 법당 짓고 전각지어, 축대 쌓아 종각 짓고 탑 세우고 불상 세워, 누운 돌은 일으켜서 높고 낮은 탑을 쌓고, 섰던 돌은 불경 파고 암벽에는 석불조성, 찬란하게 단청 입힌 대궐 같은 절집마다 식구대로 이름 적은 연등으로 가득하고, 법복 입은 신도보살 이리저리 북적대며 송편절편 사철과일 불단마다 탑을 쌓고, 색색가지 과자 쌓고 꽃바구니 넘치는데, 중생제도 천년세월 불철주야 자비발심 풍모도 인자하고 자애롭고 온화한데, 어찌하여 보살님은 마지는 고사하고 향내음도 없는데다 연등도 하나 없이 돌판 한 장 깔아 놓고 녹 쓴 향로 다기 한 점 촛대 한 쌍 앞세운 게 살림살이 전부이니 불전함도 마다시고 어찌하실 요량인지 갈 때마다 군담하면, 대중들의 공덕으로 널빤지로 바람 막고 기와 얹어 비 가리니 이만 하면 족하다고 미소로 답하시니, 불심은 알듯한데 불자들의 신심은 참으로 모르겠다. 도선국사가 지리산 성모천왕의 서몽으로 창건한 세 암사(巖寺) 중의 하나인 영험한 도량이, 어쩌다가 독경소리 끊어지고 범종소리 멎은 채로 중생들도 발길 끊어 폐사지로 남았는지 적적하고 적막하여 불심도 속절없고 신심도 속절없다.

금을 갖고 오라하나 은을 갖고 오라하나 가벼운 신심으로 간간이 찾아들어 향 사르고 물 올리면 물 한 모금 간절했던 돌부처도 반기련만 가사장삼 끝자락에 발원에만 매달리니 신심인지 욕심인지 애달프다 아니하랴. 전각이 비좁아서 들어서지 못하고 문밖에서 합장하고 예 가름을 하고나니, 지장보살 자비발심 굽어보는 협곡 속은 적적함을 더하는데, 영봉산 뻐꾹새가 인적 없는 용암사지 외로움에 섧게 한다.

태초의 비경이요 영험한 도량인데 언제쯤이면 연등 하나 내걸리고 향불이 피어날까!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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