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오월의 황강 아침
도민칼럼-오월의 황강 아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28 18: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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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오월의 황강 아침


벌써 오월도 끝머리에 접어들었다. 아침 운동을 나가기 위해 오늘도 조금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거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니, 풀내음 가득한 오월의 싱그러움이 나를 반겨준다. 마당 한켠, 30평 남짓한 텃밭에는 얼마 전 사다 심은 가지, 토마토, 오이, 고추, 도라지, 땅콩 모종이 나의 정성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마당의 잔디밭도, 대문 옆 담장 밖으로 늘어진 빨간 장미꽃과 하얀 불두화가 모두 이슬을 머금고 조화를 이루며 오월을 장식한다.

여느 아침과 같이 못 뚝 길로 나섰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함께 하는 마을 친구가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다. 마을 앞 황강 체육공원으로 나갔다. 유월의 문턱인데도 오늘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둘이서 아침 날씨 얘기를 하다가, 문득 오래전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의 얘기로 이어졌다. 그때도 이맘때 아침이면 쌀쌀할 때가 많았다. 모를 찌기 위해 맨발로 물못자리에 들어가면 손발이 시려서 애를 먹었다.

막 떠오르는 해가 얕은 구름에 가려 흐릿하다. 영창마을 앞을 흐르는 합천 천(川) 건너에 합천군에서 조성한 꽃 재배단지가 있다. 유채 씨와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꽃양귀비와 작약 꽃이 한창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유채와 보리는 작황이 그런대로 좋은 것 같은데, 토질 때문인지 꽃 양귀비와 작약 꽃은 별로 좋지 않아 아쉬움을 갖게 한다. 온 들판의 푸르름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황강(신소양) 체육공원 윗머리에서 합천 천과 황강이 맞닿는다. 합천 천의 도랑물에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르며 신나게 오르내린다. 이놈들도 아침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다. 잠시 합천 천 옆을 지나 황강 가로 들어선다. 얼굴에 와 닿는 옅은 물안개가 싱그럽다. 강물에는 길 떠난 철새들의 무리에서 낙오된 놈들인지, 아니면 원래 이곳에 사는 텃새인지 모르지만, 오리 대여섯 마리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외롭게 떠다닌다.

길옆 곳곳에는 봄나물 뜯던 아주머니들의 칼날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제법 큰 쑥들이 신이나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또 길 양옆으로 4,5년 전에 심어놓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이제 뿌리를 제대로 내렸는지 잎들이 무성하고, 그 아래 길섶에는 노란 금계국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인접한 국도변 비탈에는 하얀 찔레꽃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있고, 공원 아래쪽 넓은 부지에는 ‘샤스타데이지’ 하얀 꽃들이 눈밭처럼 눈이 부신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걷기 운동을 한다. 잘 만들어진 자전거 길을 따라 공원을 한 바퀴를 도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인근에 있는 원폭 피해자 복지관에 입소해 있는 할머니들이 띄엄띄엄 지나간다. 건강한 할머니들도 있지만, 어떤 할머니는 자가용(유모차)을 끌고 가고, 또 어떤 할머니들은 지팡이를 짓고 다닌다. 벌써 몇 년을 아침마다 이곳에서 만나다 보니, 지금은 모두 한 마을 사람처럼 친숙해졌다. 만날 때마다 반갑기도 하지만, 인생 말년의 건강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운동 나오는 할머니들이 몇 분씩 줄어든다. 고령으로 몸이 쇠약해 졌거나 돌아가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씁쓸하다.

이곳 아침 운동 길에는 이런 할머니들만 나오시는 게 아니다. 종종 중년 부부들도 나오고, 가끔은 젊은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한다. 모두 오월의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한껏 마시며 밝은 표정들이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오월의 황강 아침은 너무나 아름답다. 오월을 누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였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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