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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오경표(吳景杓)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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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6  18: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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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오경표(吳景杓)

오경표 선생은 진주시 계동 137번지 출신인 오성여(吳聖汝)의 삼남으로 1896년 4월 10일 출생했다.

진주청년회가 체육을 통해 국력을 키우자는 뜻으로 대운동회를 주최할 때 오경표 선생은 준비계 담당자였다.(1921년 5월)

보천교 소년회 재무 겸 유락부장(1923년 5월)이었고 보천교 청년회(회장 백남진) 덕육부장이 되었고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가 되어 활동하였다.(1923년 6월)

일본유학생 친목회가 조직되어 임시의장 박진환 선생이 사회자가 되고 선생은 회계보고자로 활동하고 간사로 뽑혔다.(1923년 8월)

3.1독립운동 유공자 천명옥 선생과 함께 진주유치원 경영자 겸 교사로 근무 중(1924년 10월)일 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1925년 10월 유치원 유지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2월 경 유치원을 위한 성금을 거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박규석(삼계리 박재호의 장남)의 도움을 받아 20년간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오경표 선생은 1922년 10월부터 일본 유학생 동기생 천명옥과 함께 진주청년회관 1층에서 80여 명을 모아 유치원을 개원하고 비봉동의 장순명의 열성적인 후원으로 시화전(詩畫展)과 소인극을 개최하여 간신히 유지해 나갔다.

1926년 10월에는 학부형회와 후원회가 조직되었고 진주기생조합의 후원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모면하기도 했다. 이때 박규석 씨가 매월 40원씩 내다 1927년 4월부터 50원씩 기부하였다.

또 한 번에 2천원을 기부했기 때문에 유치원을 증축하여 마침 5주년 기념식과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원장 박재표의 개회사, 원주(院主) 박규석의 식사, 원장 오경표의 연혁보고와 공사보고, 박재화, 김찬성의 축사, 그 외 공로자 장순명 등 4명에게 표창식이 거행되었다.

1927년 10월 신간회 진주지회 창립당시부터 간사가 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1929년 2월에도 간사로 선출되어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오경표 선생은 중앙시장통에서 아물지물포를 경영했었고 1936년에는 건흥(주) 상담역으로 역할을 바꾸기도 했다. 1957년 4월 11일 대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온다. 장남은 오동민(吳東玟)이다.

▲신간회연구. 이균영. 1993년 594면.

▲영남춘추(향토의 정기). 진주신문사. 영인본. 1995년 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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