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6월 보훈의 달에 부쳐/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도민칼럼-6월 보훈의 달에 부쳐/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6.07 18: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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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
 

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6월 보훈의 달에 부쳐/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6월은 보훈의 달이다. 6월 6일 현충일(顯忠日)이자 6월 25일은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정적을 깨고 북한 김일성은 남침 암호 폭동을 북한군 전군에 하달 했다. 북한군 제1, 2, 3, 4, 5, 6, 12개 사단과 제105전차 여단 등 11개 지점에서 수 십대의 탱크를 몰고 기습적으로 남침하여 한국전쟁(韓國戰爭)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국군과 연합(미군, 영국)군, 참전 16개국과(5개국의 의료, 군사, 물자 지원국) 등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북괴(北傀)와 싸우다 아낌없이 몸을 던져 산화(散華)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6·25의 잿더미 속에서 불과 40여 년만에 한강에 기적을 이루고 세계 14번째 경제대국(經濟大國)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라며 세계 언론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은 약100만 명에 가까운 국군과 연합군들이 한치의 땅도 뺏기지 않으려고(3년 1개월 간)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리며 지켜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데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이 분단된 국가로 분류돼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후기부터 몽고의 침략에다가 임진왜란 7년에, 일제침략 36년 그리고 6·25한국 전쟁 3년 1개월 등 외세에 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지금도 일본(日本)은 틈만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망동(妄動)을 하고 지난번에는 독도가 쓰시마 해협 분지라고 국정 교과서까지 실리게 했으며. 중국은 옛 고구려 가수당과 전쟁할때 쌓았던 비사성을 재축조하고 천리장성 일부였던 박작성 중국명(호산산성)을 복원해 만리장성 동쪽을 시발점이라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광개토 대왕비를 비롯하여 고구려의 발해(북간도, 서간도)를 오래전부터 중국화로 바꿔 놓았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이나 중국은 언제 어느새 또다시 침략해 올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외세에 침략을 받지 않으려면 정치인들이 당파(黨派)싸움을 멈추고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력(國力)을 다져나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오래전 미국(LA) 흑인폭동(黑人暴動)당시 미국에 건너갔다. 폭동당시 현지 친척의 도움으로 흑인 여성들과 남성을 소개받아 폭동현장에 갔다. 총탄과 방화로 불바다가 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됐다. 잠시 그들이 쉬는 틈을 타 인명구조와 물품봉사를 했지만 같이 동행했던 흑인이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안된다고 하여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폭동이 끝나갈 무렵 워싱턴에 있는 알린턴 국립묘지(國立墓地)를 둘러봤는데 한국전 기념비에 세겨진 것은 ‘자유와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찡하게 와닿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 건너와서 나라를 위해 몸 바치신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미력이나마 각종 언론 매체에 나라사랑과 안보의식 등에 글을 싣어 강연을 하면서 참전용사(전상, 전사자, 미망인 등) 집단촌인 25가구가 모여사는 광명촌을 찾아가 1년에 3~4회씩 작은 봉사를 하게 된 것이다.

국가 보훈처에서는 호국선열(護國先烈) 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6월1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해두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6월 1~10일까지 추모(追慕)의 날, 6월 11~20일까지 감사(感謝)의 날, 6월 21~30일까지 화합(和合)의 날이라고 한다.

필자는 매년마다 그렇게 해 왔듯이 지난 현충일 날에도 아침 시내 곳곳을 다니며 조기(弔旗)를 달았는지를 살펴보며 간혹 몇 몇 군데에서 국기로 게양 되어있는 것을 보고 조기(弔旗)를 달아 주기도 한다.

우리가 평화로운 조국에서 가정에 뿌리를 내리며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은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분들의 보답을 하기 위해 가까운 현충탑 등에 찾아가 꽃 한 송이를 바치면서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참배(參拜)를 올리는 것이 어떨까 싶다. 또한 유가족들을 찾아뵈어 작은 위문품을 준비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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