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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천용근(千容根)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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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2  1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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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천용근(千容根)

이명: 천용근(千溶根)

진주시 추수동 새미골 출신으로 1897년 8월 5일생이다. 진주 제2보통학교 재학 중 성적이 뛰어나 천재가 나왔다는 말을 수백 번 듣고 성장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과 재학 중 동향출신 진농 1회 졸업생 김종범을 자주 만나 시국에 대하여 토론하고 일월회와 북풍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일도 있었다.

진주여고가 설립된 지 2년이 지났으나 이사와 평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교운이 날로 쇠퇴하였다. 이때 일본유학생 구락부에서 주최하여 1926년 8월 28일 진주청년회관에서 각 단체대표들을 모아 장시간 토론한 결과 이사와 평의원들에게 경고문을 보내고 적극적인 선후책을 강구하기 위해 실행위원 5명을 선정하였다. 천용근, 한규상, 김찬성, 강영호, 박영환 등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귀국한 천용근 선생은 토론회를 개최하고 강연도 실시하였다. 1926년 8월 10일 동경유학생 구락부 주최로 진주시 옥봉동 진명학원(한규상, 김연호, 김찬성 등이 설립)에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제목은 <문화향상에 투쟁이냐? 협동이냐?>이었고 토론자는 이우적, 강춘순, 천용근이었고 상대편 토론자는 김찬성, 임영달, 한규상, 최 돈 등으로 구성하였다. 천용근 선생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귀국하여 마침 설립되는 신간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7년 10월 19일 신간회 진주지회가 설립될 때 간사로 선출되었다. 1927년 5월에는 강대창 대신에 신간회 진주지회 조직선전부 총무간사가 되어 신간회 본부 이관용 선생을 초빙하여 강연을 실시하기도 했다. 일경의 감시와 감독이 심해지자 만주로 건너가 그곳에서도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만주지역에서도 일경은 요시찰인물로 지목하여 항상 따라다녔다. 일본 고등경찰은 천용근 선생에 대하여 ‘급진과격한 배일사상을 가진 자’ 라고 기록하고 일월회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1932년 2월 31일에는 만주지역에서 신대륙사 봉천지사 기자(記者)로 활동하고 있음을 밝혔다.

천용근 선생의 본적이 진주시 도동면 초전리라고 기록하였다.

천용근 선생의 공적을 진주항일투사추모비에 다음과 같이 새겨 두었다.

‘中國에서 抗日鬪爭 展開 및 新幹會 晉州支會 幹事로 活動한 千容根’

▲독립유공자공훈록 제4권. 군가보훈처 459면.

▲와세다대학 회보. 1984년. 188면.

▲항일투사열전 제2권. 추경화. 1997년 3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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