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칼럼-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6.24 18: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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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경남서부보훈지청 복지팀장

박윤경/경남서부보훈지청 복지팀장-6·25전쟁,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신록의 싱그러움, 만개한 벚꽃 길을 걸어보는 화려한 계절 5월이 어느덧 지나가고 햇살이 따가워지는 6월이다. 6월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희생과 공헌을 다하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며, 오늘은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잊을 수 없는 아픔인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불법 남침하면서 일어났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전면적인 공격에 우리나라는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북한군은 소련과 중국의 협력을 등에 업고 파죽지세로 우리의 영토를 짓밟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군이 참전하면서 3년간의 기나긴 싸움 끝에 미국은 한국에 북한의 재침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동맹으로 방위조약을 약속하고 1953년 7월 27일 북위 38도선 부근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휴전함으로써 지금의 평화를 되찾았다.

3년이 넘게 계속됐던 전쟁으로 한국군과 유엔군 78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 되었고, 남한의 43% 산업시설이 파괴되었다. 또 도로, 철도, 항만시설이 크게 파손되는 등 국민 생활터전과 사회 경제체제 기반이 황폐화 되었다.

많은 나라들이 피폐해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고는 백년이 지나도 재건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우리는 전쟁의 폐허상태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시간에 경제적 성장을 이루며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전쟁의 아픔을 떨쳐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목숨 바쳐 싸우고 전쟁 후에는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6ㆍ25세대의 희생과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비극의 역사는 잊혀가고 6․25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전체 국민의 80%에 달한다. 우리는 앞선 세대의 희생과 공헌으로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기에 전쟁은 먼 얘기 같지만, 6·25를 겪으신 어르신들은 그 때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서웠는지 전쟁 후 재건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픈 시간은 여전히 68년 전에 멈춰 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6ㆍ25 세대가 세상을 모두 떠나더라도 그때의 참상과 아픔은 결코 잊어선 안 되고 그런 일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신다.

최근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지난 70년간 쌓였던 적대와 세계 유일의 최장 냉전의 아픔을 청산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발걸음 뒤에 국권을 잃었던 일제치하 36년과 6ㆍ25전쟁, 군사독재와 같은 암흑의 역사가 있었고, 지금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이해타산으로 똘똘 뭉친 세계 최강대국들의 틈바구니인 한반도에 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6·25전쟁이 일어났던 오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는 분들을 잊지 않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이며,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보답함으로 더욱 굳건한 단결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참혹했던 전쟁 속에서도 오직 국가의 수호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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