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지리산향기55-살아간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도민칼럼-지리산향기55-살아간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6.25 18: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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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살아간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영욕의 세월을 살아온 한 정치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걸어온 삶을 논하기 전에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 사람은 죽는다. 어떻게 살았든 생명은 자연스럽게 죽음과 이어진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이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라는 길 위에 선 여행자다. 한 곳에 머물든 여러 곳을 돌아다니든 어제는 분명 오늘과 다르다. 매일이 조금은 혹은 많이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한 공간에 머물면 멈춰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책 한 권을 받았다. <며칠 다녀올게요> 한국경제신문사에 다니면서 HK여행작가아카데미 원장으로도 있는 최병일 기자가 보내온 것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버스에 타고 있거나 간이 기차역에 있을 때 펴보면 움직이는 동선만큼 그의 글에 쓰인 여행지를 함께 떠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남들이 여행 오는 지리산에 사는 나도 다른 공간을 열망한다. 작가는 권태를 피하는 방법은 여행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이 사실은 더 여행을 다녀야 한다.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일은 감정을 소요하는 일이다. 그러니 메마르기 전에 충전을 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행지에 사는 사람뿐이겠는가! 삶의 질이 극단으로 나눠진 세상살이에다 공과 사가 명확하지 않은 관계들 사이에서 갑과 을이 나뉘어져 있고 직장에서는 을이 되지만 내가 가는 식당에서는 갑이 되고 부자 앞에서는 을이 되지만 나보다 더 가난한 이 앞에서는 갑이 되는 모순된 사고 사이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삶의 탈출구를 늘 꿈꾼다.

반도에 살아서 더 대륙을 꿈꾸지만 그동안은 섬으로 살았기에 더 갑갑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남북이 화해하는 이 상황을 우리 국민 대부분은 환영하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유무익은 차치하더라도 내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누구나 한다. 그런데 언제쯤에나 가능할까? 일본은 서로 적대관계여도 개인의 방북을 법으로 막지는 않아서 벌써 북한 여행상품이 인기를 끈다고 하는데 우리는 적성국가여서 전쟁을 끝낸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한 어렵다고 한다.

강릉에서 북한의 제진까지가 110km라고 하는데 그것만 이으면 1만1000km를 갈 수 있는 땅을 우리는 지금 못 간다. 대륙으로 향하는 우리의 꿈을 그나마 사단법인 희망래(來)일에서는 2010년부터 기획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행동이 빠른 이들은 진작 다녀왔단다. 지금도 여행객을 모집하는데 8월2일에는 별사진에 흠뻑 빠져 있는 지리산시인 이원규와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을 만난 후 대륙의 속 깊은 별을 보고 찍어온단다.

여행은 돈이 많고 시간이 많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책 <며칠 다녀올게요>에서 중국의 허난실험중학교 교사의 단 열 글자의 사직서가 중국인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단다. “세계가 이렇게 넓으니 내가 한번 가봐야겠다” 시간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그 시간의 용도만 바꿀 뿐이다. 돈은 길을 떠날 마음이 준비해 주게 되어 있으니 옷을 살 돈으로 기차표를 끊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흘러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주체적이지 못하면 살아진다,가 되고 그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쓰면 사라진다,가 된다. 살아가는가? 사라지는가?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유라시아대륙이 얼마나 광활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와 역사 문명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 의회에 가서 30초가 넘는 기립박수를 받은 문대통령의 연설문처럼대륙횡단열차는 단순한 열차가 아닌 생명의 길이고 세계인식의 지평을 넓힌 문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이며 상품과 자원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이라고 했듯이 이제 대륙을 향하여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사라지기 전에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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