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인 박노정
아침을 열며-시인 박노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0 18: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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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시인 박노정


때로 스러지는 것이/ 때로 마지막이라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온몸으로/ 첨으로 알겠네/ 아 이렇게 곱게 저물 수만 있다면/ 마침내 죽음도 서럽지만 않겠네/ 박노정 시인의 ‘미황사’ 전문이다. 시인은 너무 일찍 스러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쳤던 것일까. 그는 너무 일찍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렸다. 마치 문득 잊고 온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걸 찾으러 슬그머니 돌아가듯 떠나셨다. 촉석루는 물론이고 진주의 구석구석을 가만가만 돌아보시고 새처럼 가볍게 떠나셨다. 도리구찌를 얌전히 쓰고 미황사 뒷길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함께 진주에 살며 오랜 지인인 김장하 선생님은 그의 죽음에 대해 억장이 무너진다 하셨다. 20년 넘게 ‘진주가을문예’를 함께 운영해 왔으니 그 마음이 충분히 가늠된다. 그가 남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그러다 더욱 슬퍼지고 만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에는 비장해서 외려 슬픈 시가 많다. ‘만어사에서 취하다’, ‘단재 선생’ 같은 시를 읽다보면 시인 박노정의 비장미를 읽는 이도 함께 느끼게 된다. 사소한 것들을 꼼꼼히 관찰해서 위대함으로 전환해 내는 시인의 애정은 참으로 고맙다. 사소한 나도 끝내 용기를 내게 한다.

우리는 시인 박노정이 시를 위해 얼마나 삶을 아름답게 살았는지 알고 있다. 또한 삶을 위해 얼마나 아름다운 시 쓰기에 애썼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다 알게 된다. 그만큼 그는 삶과 시 양면에서 모두 정직하고 치열했다. 얼마나 그가 사소한 것들에게 철저하게 애정을 쏟았는지 그의 시를 읽다보면 단번에 알게 된다.

천성산 귀때기에 걸린 달/ 가녀린 도룡뇽과/ 밥 잘 굶는 비구니가/ 회오리로 바람 부는 날/ 진눈깨비 산지사방 흩날리는 날/ 숭숭 구멍 뚫린 가슴으로 창백한 낮달/ 쓸어안고 해원의 굿판으로 달려가는데/ 얼씨구절씨구/ 잘 드는 조선낫 한 자루/ 시방 막춤을 추는데/ 조선낫 한 자루 전문인데 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이 모여 비장한 생생함으로 치닫는가 말이다.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약한 것들을 사랑하는 데에 그의 삶을 바쳤다. 힘 꽤나 쓰는 축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민들의 삶에 평생 애착했다.

진주가을문예에 소설이 당선됨으로써 인연이 되어 박노정 시인을 조금쯤 곁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나 시에서 마치 샘물처럼 투명해서 조금만 관찰해도 그의 마음을 알게 된다. 평생 원주를 떠나지 않은/ 눈물쟁이 ‘걷는 동학’/ 선생의 장례식엔 3000명이 모였지만/ 무위당, 좁쌀 하나…/ 즐겨 쓴 호 한두 개가 아니지만/ 나중엔 하류라며/ 불러달라 강조했다/ “기어라, 모셔라, 함께하라” 하셨다/ 장일순 전문이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장일순 선생의 이름과 삶을 빌어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딱 정해두셨던 것이다. 서민을 위해 가장 낮은 데로 기어 살고 그들을 위대함으로 모시며 함께 살기를 바랐던 시인이었다. 너무 절절하여/ 데굴데굴 구르는 낙엽/ 너무 사소하여 들리지 않는/ 진정/ 속속들이 한통속/ 시, 별미/ 한숟갈/ 별미라는 시 전문이다. 시인은 한 잎 낙엽과 아주 작아서 들리지도 않는 진정과 시를 어쩌다 입안에 살살 녹는, 착착 감기는 감칠맛 나는 별미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별미답다. 이제 우리들의 작고 사소한 진정을 별미라고 사랑해주던 시인이 없다고 마냥 슬퍼하지만 말자. 시인이 가르쳐준 대로 우리 자신들의 작고 사소한 진정을 별미로 매순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이 바랐던 대로 우리 서민들이 자기 자신의 삶과 마음을 누가 봐도 별미로 맛보게 하면 어떨까? 그리되면 이제 진주 하늘에 별이 된 시인이 각자의 삶을 맛깔나게 가꾸고 소중히 하는 걸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으며 기특하다 칭찬해 주지 않을 것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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