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다산 정약용의 하피첩(2)
진주성-다산 정약용의 하피첩(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0 18: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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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다산 정약용의 하피첩(2)


정약용의 하피첩(보물1683-2)이 200년의 침묵을깨고 세상에 나왔다. 지금은 몇몇 소장가의 손을 거쳐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다. 하피첩은 총 4첩이지만 3첩만 전해지고 있다. 1800년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사건에 휘말려 장장 18년동안 귀양살이 10년째(1810년) 되던해 “부인홍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집올 때 혼례복으로 가져온 치마를 부쳤는데 오랜 세월에 붉은색이 이미 바랜 것을 보니 서글퍼 노쇄했다는 생각이 들어 처량하구나. 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아들들을 타이르는 글귀를쓰니 부모 생각하며 평생 가슴속에 새기기를 바라노라” 서첩에는 당시 18세 15세 두아들에게 아버지로 당부해두고싶은 말을 써넣었다. 다산은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다. “근면하면 부를 생산하고 검소는 가난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난 벼슬이 없으니 농장을 물려줄 수 없다 두 글자의 신령한 부적이 너희의 오로지 두 글자의 부적이 너희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기에 남긴다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는 근면이요 다른 하나는 검소이다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 낫다 한 평생 쓰고도 남는다 놀고 먹는 식구가 없어야 한다. 이것이 근면이다 아들에게 보낸 그 서첩을 노을빛(霞하) 치마(帔 피)로 만든 문서(帖 첩)이라는 뜻의 하피첩이라 이름지었다. 남은 천으로 하얀 꽃망울 가득한 매화가지위에 두 마리 새가 정겹게 앉아있는 그림에 시를 적어 넣고 곧 시집갈 스물한살 딸에게 보냈다. 자식들을 향한 적약용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하피첩은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했는데 6·25전쟁통에 정약용의 종손이 수원역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산은 나눔의 미학도 강조한다. 재물을 무작정 쌓아 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의복과 음식 재물은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 입으면 헤지고 먹으면 썩고 자손에게 물려주면 흩어지고 없어지기 마련이다” 다산은 그러면서 “차라리 가난한 친척이나 친구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낫다”면서 메기론을 주장한다. “재물을 저장하는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못하다 단단히 잡으려 할수록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재물이란 메기와 같은 것이다 다산이 하피첩을 통해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것은 무엇이었을까? 200년이 지난 지금시대에서도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근면과 검소 이 시대에 사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덕목일 것이다. 청렴한 세상 나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다산은 유배생활중 1810년 하피첩을 제작해 두 아들에게 남겼고 3년 뒤 1813년 시집가는 딸을 위해 ‘매화병제도’를 선물했다. 하피첩은 20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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