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9기의 왕릉 구리 동구릉
진주성-9기의 왕릉 구리 동구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7 18: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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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9기의 왕릉 구리 동구릉


경기도 구리시 검암산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은 조선조 태조의 건원릉(建元陵) 5대 문종 및 문종비 현덕왕후의 현릉, 14대 선조와 선조비 의인왕후 및 계비 인목왕후 목릉, 16대 인조비 장렬왕후의 휘릉, 18대 현종 및 현종비 명성왕후의 숭릉, 20대 경종비 단의 왕후의 혜릉, 21대 영조 및 영조계비 정순왕후의 원릉, 문조 및 문조비 신정왕후의 수릉, 24대 헌종과 헌종비 효현왕후 및 계비 효정왕후의 경릉을 말한다. 능과 능을 연결하는 흙길은 호젓하고 단아하다. 구리 동구릉에는 세계문화유산의 숨결 사이를 걷는다는 품격높은 의미가 베어있다. 동구릉은 조선시대 왕릉 9기가 옹기종기 모인 곳으로 42기의 조선왕릉 중 40기가 남한에 있고 그 중 9기의 릉이 구리 동구릉에 속해있다. 동구릉은 조선왕릉 중 최대규모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태조의 견원릉에는 억새로 덮여있다. 태조는 사후에 둘째부인 신덕왕후의 정릉에 합장하거나 고향인 함경도 땅에 묻히는 것을 원했다. 왕권다툼에서 신덕왕후의 두아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태종에게는 합장이 여의치 않고 고향 함경도 땅의 억새를 가져다 봉분에 심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년 한식때 ‘청완예초의(靑婉刈草儀’라 하여 억새풀을 베어내는 의례를 치러오고 있다. 아홉 개의 릉은 비슷한 모습을 지닌 듯 해도, 각기 개성과 의미가 다르게 담겨있다. 조선왕조는 매년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에 바닥에서 절을 할 수 있도록 판석이 놓여있다. 숭릉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릉으로 구리 동구릉의 9개 릉 중 오랜 세월 닫혀있다. 일반에 개방됐다.

사연은 가는 길을 애틋한 상념으로 몰고간다. 현종은 조선의 왕 중 유일하게 타국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효종이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얻은 이름이다.

조선왕조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무모한 북벌정책은 중단하고 대동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왕릉들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돌길인 “참도”는 양길의 높낮이가 다르다.

왼쪽은 신이 다니는 길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이다. 홍살문(능, 묘, 원, 궁전 앞에 붉은색의 문) 근처에는 그 위에 돌을 덧씌워 속새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하던 재실(開京寺)가 있다. 동구릉 산책의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은 울창한 숲과 자연 때문이다. 동구릉은 한적한 시간을 내어 들어서면 속세의 소음보다 울창한 숲이 어우러질 때 숲과 능이 고요하게 다가선다. 수백년이 지나도 숭고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왕릉과 숲길은 더욱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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