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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왜 사랑하는가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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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8  18: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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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왜 사랑하는가

나는 40년 이상 철학에 종사해왔고 누구보다 철학을 좋아하지만, 철학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말이 너무 많고 더욱이 그 말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철학적 주제를 논하기 위해 철학 대신 문학이나 음악을 동원하곤 한다. 문학이나 음악은 번잡한 설명 없이 곧바로 우리를 본질의 한복판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대학시절 대충 읽다가 만 막스 뮐러의 소설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을 다시 읽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나’와 ‘그녀’(마리아)가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이 ‘철학보다 더 철학’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묻는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Und warum liebst du mich?)”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째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어째서 태어났는지 물어봐요. 꽃에게 어째서 피어있는지 물어봐요. 태양에게 어째서 빛나는지 물어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예요. ...(Warum? Maria! Frage das Kind, warum es geboren wird— frage die Blume, warum sie blüht—frage die Sonne, warum sie leuchtet. Ich liebe dich, weil ich dich lieben muß.)”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래도 설명이랍시고 뭔가 철학적인 수사를 보탠다면 그건 결국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비가 꽃을 찾는 것처럼,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사랑이란 그냥 자연이고 운명인 것이다. 나는 체험적으로 이 말이 진리임을 확고히 보증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 ‘나’를 통해 이런 문구를 소개한다. “가장 좋은 것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에 있어서는 유용과 무용, 또는 이익과 손해, 소득과 상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그 밖에 모든 그런 종류의 일을 고려해 넣어서는 안 된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좋은 것이, 다만 그 고귀함과 좋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이 규범에 따라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그 생활을 다스려야 한다…” 사랑은 오직 그 자체의 좋음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말에는 철학적인 함의가 있는 것이다. ‘역시 독일인…’ 하고 나는 중얼거리게 된다.

거기에 ‘나’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더 추가한다. “…신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주셨어요. 그러나 신은 또 당신에게 나를 주셔서 고통을 나누어 갖게 하시려는 거예요.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 되어야 해요. 우리 함께 그것을 짊어져요…” 사랑은 고통을 나누어 갖는 것임을 그는 알려준다. 너무나 명백한 진실이다. 상대의 고통을 함께하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실은 기쁨도 그렇다.

언젠가 나는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그녀의 아픔을 나의 아픔보다 더 아파하는 그 마음이다. 그/그녀의 기쁨을 똑같은 크기로 함께 기뻐하는 그 마음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그녀의 표정이 곧 나의 날씨가 되어버리는 그 하늘이다”
뮐러의 저 소설을 직접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두 주인공의 대화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인 ‘그녀’(마리아)가 병으로 죽기 직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나는 당신의 것이에요”라는 말로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하게 눈을 감았고, ‘당신의 것은 나의 것, 당신의 마리아’라는 편지를 남겼다. 비록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지만 둘은 서로가 서로의 것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완성되었다.

이런 ‘독일인의 사랑’에 비해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사랑’은 어떠한가. 얼핏 보기에도 온갖 조건들이 그것을 규정하고 있다. 저 막스 뮐러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경계했던 ‘유용과 무용, 이익과 손해, 소득과 상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그런 저울 위에서 사랑은 위태롭게 거래되고 있다. 아니, 이젠 그조차도 아니고, 아예 사랑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로 인해 포기되거나 거부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건 자연에 대한 또 하나의 위태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나비가 꽃을 찾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한번쯤 시간을 내서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으며 젊은 두 남녀의 대화를 음미해보기 바란다. 문학의 옷을 걸친 저 신성한 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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