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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오정희의 문장강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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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4  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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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오정희의 문장

덥지요? 저도 덥습니다. 땀띠가 나지는 않았습니까? 땀띠엔 물파스가 좋습니다. 금방 가라앉습니다. 움직이는 게 겁이 나서 피서도 못가고 있습니다. 방콕해서 오정희의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나의 여름도 오정희의 문장도 아주 좋습니다. 선생의 문장은 오래 전부터 공부를 했지만 별반 확 땡기는 맛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무지였습니다. 소설공부를 한다고 설칠 때는 왜 그렇게 공부할 게 많든지. 소재와 주제에서부터 구성과 개요를 짜서 실제 집필에 들어가면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거지요. 사공이 많지도 않은데 배가 산으로 갑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박상륭 문장에 뿅 가 있어서 더 그랬습니다. 박상륭 문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선생의 작품 ‘죽음의 한 연구’는 공부할 당시에 밤을 세워 읽고 탄복하고 외우고 즐거웠습니다. 선생이나 그의 작품이나 문장은 국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오정희 문장에 대해서 단상으로 말해보려 합니다. 오정희 문장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가장 큰 사건입니다. 그것을 이만한 지면으로 이렇게 얼렁뚱당 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 읽어보니까 이렇게 좋다는 인상쯤은 얘기해도 될 듯합니다. 원래 거장에 대해서는 작은 말도 분분하지요.

특히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입니다. 소설문장의 생명은 묘사입니다. 서술도 있지만 사건도 묘사로 그 분위기를 창출하지요.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도 묘사로 형상화시켜야 합니다. 배경이야말로 묘사 그 자체가 되겠습니다. 중국인 거리에서 묘사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공간적 배경을 묘사할 때는 마치 읽는 사람이 그 공간에서 그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착각을 합니다. 인물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마찬가지로 그 인물과 함께 있는 것 같고 오래 함께 있었던 것 같답니다. 사건 묘사야말로 압권인데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이죠.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 가루를 흘려 보냈다’ 소설의 도입부이자 공간묘사죠. 놀랍지 않은가요. 항만에 위치한 한 도시를 두 문장으로 단도리했습니다. 그 시는 남북을 가르는 철도가 있으며 그 철도는 바다에 이어져 있고, 당연히 화물 기차가 그 바닷가까지 오겠죠. 석탄 같은 원료를 가공공장이 있는 다른 도시로 공급을 해야 하니까요. 화물 기차가 항만에 멈추는 장면이 얼마나 역동적인가요.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모여들었다. 뒷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 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며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를 향했다’ 중국인들을 묘사했는데 역시 두 문장이네요. 두 문장만 읽고 나면 이 사람들이 중국인들임을 딱 알 수 있고 전쟁 직후에는 뭐는 안 그렇겠냐만은 한국 속의 중국인은 얼마쯤 음침하고 음흠할 것이었죠. 그러니 언제라도 징그러운 시커먼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기어들 것이니 절묘한 비유일수밖에요.

‘목표를 정확히 맞추고 한 걸음씩 물러나 목표물과의 거리를 넓히며 칼을 던지던 백인 지아이가, 칼이 손 안에서 튕겨져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발의 방향을 바꾸었다. 칼은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로 우리를 향해 날았다‘ 사건을 묘사하는데 팽팽한 긴장이 칼날처럼 빛납니다. 한국전 직후에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백인 군인이란 일제 강점이 한창일 때의 일본인 관료처럼 거북한 무엇이죠. 어떤 묘사도 없이 ‘지아이’라는 표현으로 그런 거북함을 단번에 처리해버렸군요. 지아이! 백인군인이라는 말보다 어쩐지 그들을 잘 묘사하고 있지요? 대단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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