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친구 사귀는 이치
칼럼-친구 사귀는 이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06 11:3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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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친구 사귀는 이치


‘석시현문(昔時賢文)’이란 책에 보면 ‘면식 있는 사람이 천하에 가득해도 마음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相識滿天下 知心有幾人)’라고 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인생에 지기를 하나 얻으면 죽어도 유감이 없다!(人生得一知己 死而无憾)’라고 하기도 했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마음을 터놓아야 하는데 툭 터놓고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공자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야 친구의 이치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친구를 여러 부류로 나누기도 했다. 한 부류는 일반적인 친구로 안면이 있으면 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이며 다른 부류는 정치적인 친구로 이해관계로 묶여 있는 친구를 말한다. 이해관계가 끝나면 친구 관계도 끝난다. 또 한 부류는 경제적인 친구이다. 이른바 돈을 서로 융통할 수 있는 관계인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린다. 가장 어렵기는 도의적인 사귐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며 난제이기도 하다. 친구간의 우정은 ‘정기교(定其交)’, 정분(情分)을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그에게 요구할 수 있다.

역사상 지기를 가졌던 사람은 오직 관중과 포숙아 두 사람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중은 처음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했다. 결산할 때 포숙아는 얼마를 벌었는지 묻지도 않았고, 관중이 다 알아서 했다. 다른 사람들이 “포숙아에게 관중이 너무한다”고 했다. 둘이 같이 장사해 놓고 포숙아에게 번 돈의 십 퍼센트밖에 안 주었다는 것이었다. 포숙아는 전혀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그는 가난하다오. 그는 돈이 필요하지만 난 필요 없소.”라고 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관중의 생각은 각자 필요한 만큼 쓰자는 식이었는데 이런 관중의 마음을 포숙아는 알고 있었다. 나중에 관중의 임종이 다가왔을 때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그대가 죽은 후에 재상(宰相)직을 포숙아에게 넘기려는데 어떤가?” “포숙아에게 넘겨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는 재상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관중이 포숙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오직 포숙아만이 알았다. 관중이 포숙아에게 재상 자리를 넘기지 못하게 한 것은 제환공을 위한 것이자 포숙아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만약 요즘 사람이라면, “네가 명색이 친구라면 그럴 수 있냐? 너도 친구냐?”라고 원망했을 것이다.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술 있고 고기만 있으면 다 친구지, 어디 어려울 때 친구 하나 보이더냐?(有酒有肉皆朋友, 患難何曾見一人)

중국의 붕우지도(朋友之道)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친구 간에는 돈을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친구 간에는 서로 선(善)을 권하고 잘못을 나무라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하고 충고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붕우지도를 말하면서 「도움이 되는 친구가 셋이 있고, 해가 되는 친구가 셋이 있다(益者三友, 損者三友)」라고 했다. 도움이 되는 친구란 자기에게 바른 말을 하는 친구〔友直〕, 자신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친구〔友諒〕, 학문이나 견식이 자기보다 넓은 친구〔友多聞〕이다. 이 셋을 훌륭한 친구라고 한다. 해로움이 되는 친구란 아첨하며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편벽(便辟)형 친구, 앞에선 치켜세우다 뒤에선 비방하는 선유(善柔)형 친구, 말을 과장되게 하는 편녕(便佞)형 친구이다. 선을 권하고 잘못을 나무랄 친구도 없으며, 또 지지하는 사람조차 없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쓸쓸 하겠는가? 중국의 붕우지도(朋友之道)에는 스승도 포함된다. 중국 문화에서는 흔히 스승과 친구를 같이 말한다. 즉 사우동도(師友同道)라 한다. 옛사람들은 제자를 사우지간(師友之間)이라 했다. 사람은 위로는 부모에게, 아래로는 처자에게 하지 못할 말들이 많으나 친구에게만은 할 수 있다. 이것이 붕우지도이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이치는 ‘易其心而後語(역기심이후어)’, 서로 마음을 아는 데 있다. 그렇지만 마음을 알기는 아주 어려운 문제가 아니런가?

오래 사귀어 온 친구에게 지적하고 충고를 했다가 크게 오해를 하여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4000년 전에 중국에서 쓰여 졌다는 ‘음부경(陰符經)’에 보면 ‘은혜가 해를 낳는다(은이생해: 恩裏生害)’라고 했다. 친구의 사람됨을 깊이 읽지 못하고 던진 충고에 후회가 막급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관중과 포숙아와 같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몇이 있으니 다행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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