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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타와라 마치 ‘초콜릿 혁명’-거품, 백년 후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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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2  18: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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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타와라 마치 ‘초콜릿 혁명’-거품, 백년 후

여름이다. 밤이다. 혼자서 맥주를 한잔 홀짝거리다가 문득 일본의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토속 맥주의 거품도 부드러운 지금 가을밤 백년 지난 후에는 아무도 없을테지”(地ビールのバブル優しき秋の夜百年たったらだあれもいない)

이런 번역으로 이 시의 맛이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다. 기가 막힌 명구다. 1987년 일본을 뒤흔든 {샐러드 기념일}(サラダ記念日)을 냈을 당시 타와라 마치는 20대 중반의 여대생이었다. 그 후속편인 1997년의 이 시가집 {초콜릿 혁명}(チョコレート革命) 역시 공전의 히트였다. 일본 전통 시가인 단가(5-7-5-7-7의 정형시)의 형식에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의 톡톡 튀는 연애담을 실어 담았다. 온 일본이 열광했었다. 그 중의 하나로 이 시가 포함돼 있다. 장면 속의 그녀는 아마도 여행 중일 것이다. 지방의 토속 맥주를 한잔 하다가 그 부드러운 거품의 맛과 더불어 아마 느꼈을 것이다. 지금 이리저리 얽혀 살고 있는 이 수많은 인간들도 100년만 지나면 결국 모두 이 거품처럼 사라져 없을 거라는 걸. 가을밤이라 아마도 더욱.

‘100년 지나면 아무도 없다’는 이 사실. 이 준엄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만 보통은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현재에 몰두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여기엔 기묘한 대비가 있다. ‘이’ 가득함과 ‘저’ 텅 빔. ‘이’ 엄청난 사람들과 ‘저’ 아무도 없음. ‘이’ 절실함과 ‘저’ 아무것도 아님. 그 사이에 기껏해야 100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저’ 텅 빔에 비추어 보면 ‘이’ 모든 것은 결국 맥주의 거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은 이 맥주의 거품이 나의 현존인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부드럽다’. 그 한 순간의 부드러운 감각이 나의 현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이 한순간에 집중하자. 이 한잔의 토속 맥주에 매달리자. 이 맥주의 거품에 감동하고 이 거품의 부드러움과 함께 행복을 삼키자. 어쩌면 그것은 영문도 모른 채 부여받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신성한 의무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어디 맥주뿐이겠는가. 그것은 다만 하나의 대표, 하나의 상징. 다른 대체자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것은 커피여도 좋고 빵이어도 좋고 그냥 산책이어도 좋고 데이트여도 좋다. 야구여도 좋고 드라마시청이어도 좋다. 그 한 순간의 ‘부드러움’이 중요한 것이다. ‘거품의 부드러움’,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철학적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거품. 그러나 부드러운 거품. 상냥한, 따스한, 친절한 거품. ‘야사시이’(優しい)라는 일본어는 이 모든 감각들을 포괄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그런 것을 추구하며 즐기며 그렇게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철학에서는 삶을 적셔주는 ‘의미’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거품이라는 것을. 100년만 지나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게 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을. 삶의 거의 전부를 걸고 있는 그리고 모질게 집착하고 있는 돈도, 권력도, 지위도, 명성도, 혹은 사랑조차도 100년 후에는 다 텅 비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정도껏 해야 한다. 삶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타와라 마치가 이런 철학을 알고서,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저 시구를 썼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해본다.

‘거품의 부드러움을 즐기자. 최선을 다해. 그러나 잊지는 말자 그것이 결국 거품이라는 것을’

그러면 적어도 지금의 한국인들처럼 거품의 노예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와 100년 후를 함께 보는 그런 마음의 거리, 그것을 우리는 철학적 성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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