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 닭대가리
도민칼럼- 닭대가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15 20:04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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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수필가

이호석/합천수필가-닭대가리


닭대가리, 별로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짐승 머리를 대가리로 표기하고 있으니 나쁜 말도, 틀린 말도 아니다. 일상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닭대가리로 지칭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기억력이 심히 좋지 않거나, 생각이 좀 얕은 사람에게 놀림조로 하는 말이다. 혹시 나도 누구에겐가 이런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전에서 짐승 머리를 대가리로 설명하고 있지만, 소, 돼지 등,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하는 놈들은 신분도 상승하는지 주로 머리로 부른다. 심지어 돼지머리는 각종 고사(告祀)장에서, 만물의 영장, 인간이 주는 용돈을 받아 입에 물고 절까지 받으며 빙그레 웃기도 한다. 마치 우리 인간의 짓거리를 보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유독 닭대가리만은 아둔한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명성이 더욱 확산되고 있으니, ‘대가리’ 호칭을 떼버리기는 좀체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봄, 마당 끝 개나리 울타리가 노란 꽃으로 장식할 때, 집 뒤 텃밭에 두 평 반 남짓한 닭장을 짓고 개나리꽃 같은 노란 병아리 열한 마리를 사왔다. 그동안 잘 자라 큰 닭이 되면서 검붉은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네 마리는 명이 짧아 죽어버렸고, 한 마리는 식구들의 보양식으로 희생되면서 이제 겨우 여섯 마리가 남았다. 닭을 기른 지 일 년 사 개월, 직접 기르고 관찰하면서 이놈들의 머리를 왜 대가리로만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보통 농가에서 몇 마리씩 기르는 닭 먹이통은 주로 시장 철물점 같은 데서 파는 고무 제품이다. 대체로 크고 무거워서 닭들이 마음대로 넘어뜨리지 못한다. 주식(主食)인 구매 사료는 여기에 주고, 가끔 별식(?)을 줄 때는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준다. 맛있게 먹다가도 금방 그 상황을 잊어버리고 먹이 담긴 그릇을 발로 차서 흙 범벅을 만든다. 물을 부어주면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순간,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고 걷어차 물을 쏟아버리기 일쑤다. 또 매일 먹이를 주며 사랑을 쏟는 주인도 몰라보고 항상 경계를 하고, 특히 수놈은 주인에게 털을 고추 세우며 대들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무더위에 암탉 한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폭염 경고가 내린 며칠 전, 또 한 마리가 죽었다. 여름이면 죽는 닭을 보면서 더위가 심하면 몸이 약한 놈은 죽기도 하는구나 싶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드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 여름에 죽은 닭과 며칠 전 죽은 닭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유심히 관찰한다.

닭장을 지을 때 기둥을 작은 철 파이프로 세우면서, 바로 지면에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크기의 파이프로 용접을 해 고정했다. 닭장에서 기르는 닭은 가끔 흙 목욕을 해야 한다고 해서 닭장 바닥은 흙으로 그대로 두었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닭들이 조금이라도 몸을 시원하게 하려고, 자주 땅을 파고 엎드려 있다. 이때 지표면에 있는 파이프 밑까지 파고들며 머리를 조금 들여 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놈이 일어날 때, 몸을 조금만 움츠리면 금방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머리를 바로 쳐들기만 하다가 결국 그 파이프에 받혀 죽은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히 닭 기르는 얘기를 했다. 닭장에 여유가 있어 서너 마리를 새로 사 넣어 기르고 싶다고 했더니, 동석한 친구가 닭들이 있는 우리 안에 다른 닭을 넣으면 기존의 닭들이 쫓기 때문에 함께 기르지 못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식당 주인이, 이곳에서 좀 떨어진 자기 집에서도 닭과 오리, 오골계 등을 많이 키운다며 한마디 거든다.

기존 닭이 있는 닭장에 다른 닭을 넣을 때는 반드시 캄캄한 밤중에 갖다 넣으란다. 날이 새고 아침이 되면 계속 함께 있었던 닭으로 착각하여 쫓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소리라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더니, 꼭 한번 그렇게 해 보란다. 정말 그렇다면, 그놈들 진짜 닭대가리 소리를 들어도 싸다며 주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동안 닭들의 여러 어리석은 행동을 생각해 보고, 또 오늘 이 얘기를 들어보니 분명히 닭대가리는 돌대가리가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나의 주관적 판단인지도 모른다. 편견으로 이러한 판단을 내 머리에 고착시키고, 남에게 함부로 전파한다면 닭들에 대한 큰 명예 훼손이 될 수도 있다.

닭대가리의 지능지수가 정말 어느 정도인지 인터넷을 뒤져본다. 사람은 평균 100, 돌고래와 개는 65, 소와 돼지는 45, 까마귀 20, 닭은 7이란다. 이만하면 나의 판단을 증명할 근거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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