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전선야곡, 1988교련복, 2012총선
1951전선야곡, 1988교련복, 2012총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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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조/premiere 발레단 단장
나름의 총선 특집이다. 우선은 유명한 옛 노랫말로 시작해 볼까 한다. 1951 ‘전선야곡’(유호 사, 박시춘 곡, 신세영 노래).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 아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 아아아~쓸어안고 싶었소’ 한 마디로 사랑가다. 애국-애족(愛國-愛族):충(忠), 애모(愛母):효(孝), 자애(慈愛): 인(仁). 또 장부가이기도 하며 장부(丈夫)의 공(功)은 역시 나라를 위한 것이니 충효가(忠孝歌)이기도 하다. 사랑가, 장부가, 충효가가 울려 퍼지는, 때는 1951년이다.

1988교련복. 군부독재의 시기에 올림픽이 열렸던 해. ‘총화단결’을 밑바탕으로 한 ‘반공’과  ‘조국 근대화’의 결실로 이루어진 올림픽(‘냉전’ 중에 열렸던 이 올림픽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각 진영만의 잔치로 끝났던 두 차례의 올림픽 ―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동구권만의 잔치, 1984년 로스엔젤리스 올림픽은 서구권만의 잔치 ― 이후 양 진영이 함께하는 평화의 올림픽으로 그려졌던  ‘88 서울 올림픽’은 우스꽝스럽게도 한 진영에서만 열렸다). 당시 몹시도 교련복이 입고 싶었더랬다. 교련복을 입으면 ‘장부’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힘이었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만 해도 이 힘은 무지하게 셌었다. 초등학교 때는 ‘방위성금’이라는 것을 냈었는데, ‘뽀빠이’ 과자가 20원, ‘깐도리’ 하드가 50원 할 때 500원 정도를 냈으니까 엄청나게 큰돈이었던 셈이다. 초등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삥뜯’어가면서 부끄럽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는 ‘교련’이라는 것도 했다. ‘북’의 ‘도발, 재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공부만을 해도 시원찮을 학교는 학도병 양성기관을 겸하고 있었다. 물론 6·25 동란(同亂)의 참혹한 기억을 어린 필자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같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교련’의 이면에는 ‘남성성’이라는 담론과 맞물려서 꽤나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국가권력의 모습이 있었던 듯하다. 이 같은 가정은 필자를 포함한 당시의 많은 남자 중학생들이 왜 그토록 ‘교련복’을 선망했었는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그 타당성이 충분히 입증될 것 같다. 왜? 일차적으로 ‘교련복-학생의 군사훈련복’이라는 하나의 ‘단체복 양식’은 사회 전체에 은밀하게 퍼져 있는 군국주의적 ‘획일성’을 만들어낸다. 다음에 그것은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남성상’ 즉, ‘내 가족과 내 나라를 지키는 어엿한 대장부’를 재현하면서 당시 필자를 포함한 남자 중학생들 즉, ‘곧 교련복을 입게 될 어린 남자들’의 몸에 새겨지게 된다. 그런 몸은 ‘대장부’를 갈망하게 되고 끝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국가의 군국주의적 획일성의 일부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게 된다. ‘교련복’이라는 단순한 하나의 패션 스타일을 통해 국가권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평화롭기만 한 총력전’은 교정(校庭)에서 교련선생님(矯正官 - 대부분의 교련선생님들은 선도부 또는 학생부의 일원으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었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학교는 군사훈련소임과 동시에 ‘감옥’이기도 했던 것이다. 때는 1988년이다.

이제 그 ‘장부’의 이미지를 온 세상에 퍼뜨린 장본인의 딸이 대표로 있는 정당이 파란색 옷에서 빨간색 옷으로 바꿔 입고 이름표만 바꿔단 채 선거에 나섰다. 물론, 1951년의 ‘전선야곡’도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고, 1988년의 교련복도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해군기지 만든답시고 온갖 거짓말을 해대며 폭약까지 동원해 가며 예쁜 바위들을 터뜨려 깨부수는 그런 발상이 1951년과 1988년의 그 때와 다른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아버지 한 명으로도 모자라 스스로 ‘여장부’가 되려는 발상 또한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어렴풋한 ‘장부가’가 여전히 귓전을 때리고 있는 오늘은 2012년 총선 D-10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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