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동체 사람들
작은 공동체 사람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0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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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순/경성대 무용학과 교수
지난 12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엊그저께 올린 제 22 회 그랑발레 정기공연은 그 기억을 잊게 해줄 만큼의 관객들이 찾아와준 감사한 공연이었다. 더욱이 별 탈 없이 진행된 공연과 관객들의 반응은 그간 공연을 준비해온 우리들의 노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어 주었다.

작년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시작되었던 이번 공연을 위한 준비는 끝날 줄 모르는 추위와의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참으로 극복할 것이 많음을 가르쳐 준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연습실로 모두가 모여드는 시간은 밤 9시, 추위 속에서 꽁꽁 언 발가락의 무딘 감각으로 중력을 거부하려 무던히도 뛰어 올랐다. 그리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보려 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거기서 구르고 또 기었다.

없는 예산으로 대관하고 팸플릿 만들고, 부족한 단원 수로 안무하고 춤추고, 스태프도 하고, 게다가 난방도 없이 할 수밖에 없었던 리허설들. 공연시간동안 튼 2시간의 난방은 아무리 없는 살림에도 관객들만큼은 추위에 떨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단원들의 마음이었다.

개성이 너무도 다른 이들이 서로 만나서인지 우리 그랑발레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없는 연습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일상 중에 잠을 자겠다는 마음은 그랑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애당초 포기해야만 하는 욕망 중의 하나다. 하물며 공연을 위해 내어놓는 쌈짓돈들은 일 년 예산은 물론이거니와 일 년에 단 한번 있는 정기 공연을 치러내기에도 그랑사람들을 허덕이게 만든다. 그랑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것들은 이미 신체의 조건이나 음악성 그리고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몸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본능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가. 

그랑발레는 서로의 아이디어와 움직임을 공유하며 2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학연과 지연을 넘어 함께해 온 작은 공동체이다. 그랑사람들 사이에는 특별한 우두머리가 없다. 그래서 공동체내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어떠한 권력의 입김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갈등 해결을 위한 서로간의 치열한 논쟁과 설득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권력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이며,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랑사람들의 직업은 전문 무용수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들을 한다. 낮에는 돈을 벌며 밤에는 공연준비를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놓는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생활이다. 그랑사람들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며 동시에 스태프다. 이번 공연에서 누군가가 안무를 하면 나머지 단원들은 그 작품을 위한 무용수가 되어준다. 역할이 반대가 되면 또 그리해 준다. 안무나 공연에 참가하지 않는 단원들은 무대의 연출과 감독 그리고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공연들은 서로를 위한 품앗이로 가능해진다. 이 품앗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앞으로 해야만 할 그랑발레의 유지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이다. 서로의 작품에 출연하며 공유하게 되는 아이디어와 움직임은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각자가 더 나은 안무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무한경쟁의 가능성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무한경쟁은 그랑발레를 생이 약동하는 공간 즉, 엘랑비탈elan vital의 장으로 만든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함께할 수 없었을 여러 소중한 시간들과 공간들. 이것이 바로 그랑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이다. 

요즈음 그랑발레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없다. 아마 이상에서 풀어놓은 넋두리들이 그랑발레에 들어오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일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하물며 가치 있게 생각하는 바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랑발레사람들이 그랑발레를 사랑하는 이유가 이상의 넋두리들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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