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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전기에 대하여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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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18: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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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전기에 대하여

2018년 여름, 정말 기록적으로 더웠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햇볕난방’만으로 지내는 우리집이긴 하지만 이번 여름엔 선풍기와 에어컨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다보니 정부까지 나서서 전기료를 깎아주는 둥 난리법석을 떨었다. 누진제 보완 어쩌고저쩌고 하는 논란을 지켜보다가 문득 ‘아하, 전기!’ 하는 생각이 전기처럼 번뜩 지나갔다.

현대의 생활에서 전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까? 전기는 삶의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난 100년을 돌이켜볼 때, 세상의 변화는 실로 아연실색할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100년은커녕 몇 십년 전만 해도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내가 아직 어렸던 1950년대, 그때만 해도 보통 가정집엔 전깃불도 수도도 전화도 없었다. 냉장고와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다. TV는 중학생 때 서울에 가서야 처음 구경할 수가 있었다. 내가 유학을 떠났던 1980년엔 아직 PC도 없었다. KTX도 물론 없었다. 지금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스마트폰 인터넷, 그런 건 사실 극히 최근에서야 생겨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저 1950년대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든 문명이 거의 대부분 ‘전기’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기 없이는 성립불가능이란 사실을!

나의 철학적 방법론인 ‘결여가정’을 적용해보자. ‘만일 …가 없다면’ ‘만일 …가 아니라면’. 그렇다, 그러면 그 존재의 가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일 전기가 없다면….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엄청난 재앙이다. 거의 전 지구가 올스톱이다. 밤에 불이 꺼지고 야경이 사라지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탁기 냉장고가 멎는다. tv와 pc도 꺼진다. 폰도 먹통이 된다. 인터넷은 꿈도 못 꾼다. 영화? 당연히 못 본다. 그 정도는 아직 약과다. 엘리베이터가 멎는다. 자전거만 빼고 지하철 기차 선박 비행기 등등 모든 교통수단도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은행도 병원도 난리가 난다. 모든 공장도 생산중지다. 세상에! 이게 재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모든 게 다, 모조리 전기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의 발견과 그 실용화는 인류역사의 최대 사건 중 하나였다. 그것은 기독교의 등장이나 문자의 사용에 필적하는 과학적 대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의외로 거의 망각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철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그 현대편을 쓰면서 토머스 쿤의 철학을 한 꼭지 다루었었다. 그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지금도 그 분야의 고전으로서 확고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가 그토록 ‘패러다임’의 변환을 강조하면서 과학의 역사에서 전기의 발견을 왜 언급하지 않는지 좀 의외였다. 면전에 있다면 한판 토론을 벌여보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나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나 파스퇴르의 페니실린 못지않게 중요한,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과학적 사건이라고 확신한다. 인류의 생활에 끼친 영향을 볼 때 이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전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될 뿐이다. 그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물과도 비견된다. 나는 노자의 명언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엄청 좋아하는데, 현대인들은 이것을 한번쯤 ‘상선약전’(上善若電)이라고 바꿔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의 가치를 사람들은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다. 물이나 전기 뿐만도 아니다. 공기나 흙이나 불도 그렇고, 그리고 부모도 마누라도 다 그런 것이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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