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노천 박물관 Ⅱ
경주남산-노천 박물관 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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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희/창신대학
소방방재학과 외래교수
시인
아아, 눈앞에 또 한 번 황홀함. 이번에는 선각 육존 불이다.

10미터 가량 바위 면에 얼굴 부분에 돌을 새겨 조각 수법이 독특하여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 정교하게 물 빠짐을 해놓아 세월의 풍파에도 오래 견딜 수 있게 지혜의 수로를 파놓은 것을 보며 선조들의 지혜를 감탄한다. 산 넘어 광활한 시야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어 본다. 정상에 가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조금만 가면 된다는 말에 두 시간도 더 걸었는데 또 조금 남았다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용기를 가지고 다시 오른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제법 말문이 열리고 입가에 여유의 미소도 번진다. 욕심을 버리고 얻은 보상인가 했더니 석불좌상하나 또 보인다. 능선 왼쪽 중턱에 위치한 화강암으로 조각부처, 아마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짐작해본다. 두 귀가 짧고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나발)을 붙였고 정수리는 상투(육계)를 가진 부처님, 쉴 사이 없이 나타나는 돌부처들에게 매료 되어 이제는 힘든 걸 잊어버렸다.

어디선가 가까이 산사의 풍경소리와 은은하게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내게는 오늘따라 처량하게 감겨온다. 드디어 상선암이 바라보인다.

바위능선에 위치하여 스릴 넘치는 암자, 금오산 정산까지는 1km 지점이라 팻말이 보인다. 암자에 들어가 욕심 없는 절을 올린다. 향불 냄새가 예사롭지 않아 절집이 주는 숙연함은 삼배를 올리게 만들고 소원을 비는 위력까지 발휘한다. 정상은 멀리 않았다. 높이 7미터로 냉골(삼릉계)에서는 제일 큰 불상하나 남산의 북 봉인, 금오 봉을 향해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 바위에 위치해있어 또 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암반을 파내어 거칠게 절벽을 가로 질려 만든 흔적들, 그 아래 유리 상자에 즐비한 염원의 촛불, 그래서인지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남산에는 마애불 빼고는 거의 머리가 없는 상태이고 인위적으로 파괴되어 유실된 것 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와 반대로 잃어버린 불두를 우연히 발견하여 찾은 열암골 석불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들은 왜 이토록 정상을 좋아하는 것일까. 정복의 욕구는 왜 한결같은지 거창해 보여도 막상 정복해보면 별것 아니고 허무와 욕심인 것을. 정상에 서니 멀리 형산 강물이 햇볕에 부서지며 황량한 내남평야도 시원하게 펼쳐 보여 눈에 감친다. 힘들만 하면 돌부처가 여기저기 나타나 혼을 반쯤 빼고 정신없이 올라온 길. 3시간 30분간의 산행, 노천 박물관의 일부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세월의 흐름과 바람과 물의 작용으로 형체가 많이 희미해진 도상들을 바라보면서 세월에 이길 장사가 없다는 무상을 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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