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구한감우(久旱甘雨)
칼럼-구한감우(久旱甘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10 18:16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구한감우(久旱甘雨)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구한감우(久旱甘雨)’라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도 그때그때에 따라서 이름이 있었다. 한 번 불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태풍에 이름이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말년에는 날이 몹시 가물어서 백성들이 모내기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태종은 가뭄 속에서 땡볕 아래 하루 종일 앉아 하늘에 빌었다. 그러다가 태종이 임종하였는데, 이때 아들인 세종에게 “내가 죽어 넋이라도 살아있다면 기필코 비를 내게 하리라”하고 유언을 하였는데, 숨을 거둔 후 과연 음력 5월 10일 흡족하게 비가 내렸다. 그 후로 매년 이날만 되면 비가 내리므로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하였다. 태종은 죽기 4년 전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이것도 나라에 가뭄이 들자 자신의 부덕함 때문이라 하여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양위(讓位)하였던 것이다.

광해군은 배다른 형제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낸 후 방안에 가두어 놓고 불을 때어 구들장을 달구어 태워 죽였고, 그 자신도 인조반정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어 죽었다. 해마다 강화도에서 영창대군이 죽을 때 내리는 비를 ‘살창우(殺昌雨)’라 하였고, 또 제주도에 유배된 광해군이 죽을 때인 음력 7월 1일에 내리는 비를 ‘광해우(光海雨)’라 불렀다고 한다.

또 음력 6월 29일 경상남도 진주지방에 내리는 비를 ‘남강우(南江雨)’라고 불렀다. 정유재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자 군관민 수만 명이 죽었다. 그 한(恨)이 맺혀서 내리는 비이므로 ‘남강우’라 부르게 되었다.

음력 7월 7일 칠석날 내리는 비는 ‘쇄루우(灑淚雨)’라 하는데 이 비를 견우와 직녀의 눈물로 보았는데, 비가 마치 흩뿌리듯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해군 서면에는 높이 786m의 망운산(望雲山)이 있다. 풀이하면 ‘구름을 바라보는 산’이라는 뜻이다. 즉 비를 기원하는 주민들의 간절함이 담겨져 있다. 망운산 기우제문(祈雨祭文)을 소개한다. 망운산 산신령님께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컨대 높고 높은 저 묏부리는 실로 으뜸 솟아 구름이 일고 비의 덕택으로 만물을 이롭게 했습니다. 기우제를 모시는 저희들은 예부터 같은 동네 수백 세대의 마을에서 영덕을 입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이제 농사철을 당하여 가뭄이 극심하오니 온 백성들이 고기처럼 입을 벌리고, 천지 사방이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오직 신은 이웃을 내리 살피시니 어찌 참으리오. 은혜로운 단비를 흠뻑 내려 주시고 제수를 남기지 마옵소서. 이에 공경과 예를 다하여 삼가 고하고 고하나이다(원문생략).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한강변에는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세종 임금이 그의 형인 효령대군이 정자에 나와 잔치를 벌였는데, 이때 오랜 가뭄 끝에 반가운 비가 내렸으므로 세종이 즉석에서 ‘희우정’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사람들은 이 정자가 기쁜 정자가 아니라 효령대군이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겼으니 오히려 ‘슬픈 비’였을 것이라 하여 ‘비우정(悲雨亭)’이라 빗대었다는 글도 있다.

원래 ‘희우(喜雨)’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였다. 그가 지은 시 한편을 보면… 「만약 하늘이 진주(眞珠)를 내리면 추운 백성들이 그것을 의복으로 사용하지 못하며, 가령 하늘이 옥석(玉石)을 내린다면 배고픈 백성들이 이것을 식량으로 삼아 배고픔을 면하지 못한다. 가물어 근심할 때 비가 삼일동안 내리지, 이것은 누구의 역량인가? 백성들은 모두 태수라고 말하나 태수는 공이 없다고 하며, 공을 하늘로 돌리니, 하늘은 말하기를 자기는 아니라고 하며, 공을 조물주에게 돌리고, 조물주는 자기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고 태공(太空)에게 돌리고, 태공은 넓고 망망하여 붙일 수 없으니, 그래서 내가 정자에다 ‘희우(喜雨)’라고 적었다.(원문생략)」고 하였다. 가뭄에는 진주도 옥석도 소용이 없다는 말에 참으로 공감이 간다.

오랜 가뭄 끝에 ‘구한감우(久旱甘雨)’가 내렸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 가뭄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아는 마음가짐, 하늘을 향해 가슴을 비우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모처럼 내리는 구한감우는 정치를 잘 하라는 하늘의 메시지 인 것 같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