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고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고파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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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편집기자

“뭐해, 일요일인데 집에만 있지말고 우리 집에 놀러 와” “씻고 준비하기 귀찮은데… 가면 뭐하게” “나 시장에 왔는데 수박 보니까 수박 먹고 싶어. 혼자 먹긴 크잖아. 같이 수박 먹자.”
내키지 않는지, 시큰둥한 대답이 들려온다. 수화기 너머로 아삭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얘네 집은 벌써 수박 먹고 있나’ 다급해져 “너 뭐 먹냐!” 외치니, “오이. 엄마랑 마사지하고 남은 거.” “너도 오이나 사 먹어. 수분 보충에 좋대. 수박이나 오이나 똑같이 초록색이네 뭐.” “넌 수박을, 빨간 부분 두고 초록 부분 먹냐.

실패다. 수박도 오이도 사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친구가 오지 않는다니 수박 생각은 뚝 떨어졌다. 오이는 싫었고, 오이마사지를 하기엔 붙여줄 엄마가 옆에 안 계셔서 엄두가 안 났다. 마스크 팩이나 한 장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스크 팩은 붙이기도 간편했고 얼굴도 촉촉해졌는데 기분은 여전히 축축했다.


고향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릴없이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피자, 치킨, 탕수육…, 수화기에 대고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을 줄줄이 읊고 있으려니, 친구가 왜 하필 혼자 먹기 부담스러운 배달 음식들만 먹고 싶으냐고, 그런 건 살만 찐다고 타박한다. 그러게. 언제부턴가 외로움과 배고픔을 혼동하게 되었다. 주로 생각나는 것은, 맛있는 것 보다는 ‘함께’라는 분위기에 먹는 음식들이었다. 안쓰러웠는지 친구는 정 먹고 싶으면 중국집에 자장면이랑 볶음밥을 시켜서 자장면은 지금 먹고, 볶음밥은 저녁에 데워 먹으란다. 어떻게든 자장면이 먹고 싶다면, 괜찮은 아이디어다.

냉장고엔 반찬이 가득했고, 집을 나서면 가까운 곳에 1인분만 사다 먹을 수 있는 김밥, 떡볶이, 튀김 따위를 파는 분식집과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다들 내키지 않아 결국 중국집에 전화를 했다. 입구에서도 한 눈에 내부가 다 보이는, 함께 먹을 이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방의 문턱에 두 개의 그릇을 꺼내 놓으며 배달부 아저씨가 말한다. “아가씨, 이 동네엔 자취생이 많아서 한 그릇도 배달해 줘요.” 괜히 민망했다. 좋은 정보였는데 그다지 반갑지도 않았다. 

두 끼 연속으로 중국음식의 치명적인 느끼함을 만끽하고 후회만 남은 더부룩한 밤이 왔다. 낮에 수박을 거절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피자 어때, 난 먹고 싶은데 가족들은 느끼해서 별로래. 맥주도 쏠게. 콜” 수박 대신 진작 피자 얘길 할 걸. 고픈 것이 배는 아니었다. “…좋지, 콜”
‘내일은 피지 흡착용 팩을 사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기름기로 범벅된, 그러나 외롭지 않은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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