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지리산향기58-그들만의 세상에서 쓰이는 말
도민칼럼-지리산향기58-그들만의 세상에서 쓰이는 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03 18:12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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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그들만의 세상에서 쓰이는 말


곧 다가올 한글날 특집으로 방송을 준비 중이라는 제작사에서 출연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법률, 금융, 행정, 정책, 외래어 안전용어 등 그곳에서 쓰는 언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질문이 들어왔는데 소위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내가 무식한 것인지, 그들이 쓸데없이 유식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만이 아는 언어가 필요했던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이 촬영을 시작했다.

제작사에서 준 질문지의 첫 표면에는 <이상한 한글나라 엘리트>라고 씌어 있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제목이지만 동화처럼 신비롭고 즐거운 한글은 없고 암호만 가득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분야들인데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별도의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법률 용어에서 상린자(相鄰者), 결궤(決潰), 몽리자(蒙利者), 방실(傍室) 등 한문으로만 된 단어들은 그렇다 치고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혹은 범죄 행위로 생하였거나 등의 일제 강점기 때의 어투는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서로 경계가 붙어있는 땅의 소유자라는 뜻의 상린자(相鄰者)는 문맥에서 옆 땅의 소유자라 하거나 이웃사람이라고 하여도 뜻을 알 수 있고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 또는 그런 것을 무너뜨림 이라는 결궤(決潰)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낫고 이익을 얻는 사람 또는 덕을 보는 사람이라는 몽리자(蒙利者) 그리고 건넌방이라고 쓰면 되는 방실(傍室)에 이르러서는 어처구니없는 웃음까지 나오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들리지 않아야 할 곳이 법원 병원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찌 그 두 군데를 한 번도 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름 지식을 얻어도 그 동네 지식은 그들끼리만 쓰는 언어로 되어 있어서 으레 변호사나 의사의 도움 없이 알 수 없는 게 그동안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소송을 하거나 아픈 사람이 본인이나 가족인 경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하는데 그들의 입만 바라봐야하니 이래서 집안에 법조인이나 의료인은 한사람 두어야 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목표를 정하고 교육 잘하는 동네로 이사를 가고 과외를 시키고 난리를 치는가 보다.

그 두 군데는 또 그렇다 치자! 금융권도 쓰는 언어가 비일상적인 한문이 태반이고 우리의 생활을 관할하는 행정이나 정책은 세계화의 추세인지 제목만 보고는 도통 무슨 사업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촌에 사니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보았는데 외식사업 분야의 정책명이 <인큐베이팅>이라고 하는데 외식산업이 미숙하니 키우자는 정책인가? 갸우뚱하게 보다가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은 도시보다 시골에서 실현되는 것이니 혜택을 받거나 실행하는 당사자가 농민이나 어민일 텐데 이 경우 단순한 노동자 이외에 어떤 역할도 맡기가 어렵겠구나!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체 그런 정책이 있다니 시키는 대로 하는 이 또한 그들만의 리그구나, 씁쓸해 왔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안전 용어에 와서는 더 가관이었다. 이곳에는 또 영어가 천지였다. 비상코크란 단어를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보았는데 화재 발생 시 비상코크를 돌려 수동으로 문을 열라는 글귀를 보며 화재가 난 그 곳에 어르신들만 계신다면 비상코크가 무엇인지부터 공부해야 생존이 가능하겠구나 싶으니 화가 나기까지 했다.

언어는 사회의 반영이니 무조건 한글만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것도 현실이니 우리의 정체성을 위하여 일본식 어투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을 가둘 수는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통하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단어를 사용하며 풍성하게 대화하는 것을 비난하여 고유어만을 쓰자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다. 보험을 들면서 약관을 이해하려면 전문적 공부를 해야 하고 몸이 아픈 상태를 알고 싶어 진료기록을 열람하고픈 데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제3세계의 언어만 봐야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아는 판결을 하고 있을 수 없는 판결 조작도 자행하였나 보다. 행정을 잘못하면 대통령도 물러나는 세상인데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버티고 있는 그 집단은 어디인가? 곧 다가올 한글날에 암호집단인 사법부부터 기본인 한글부터 사용하도록 암호해독작업을 했으면 싶다. 혹시 그들은 그들만이 쓰는 언어 말고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우리의 생사를 맡겼던 건 아닐까? 갑자기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이 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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