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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황국 식민화 교육장소 진주신사(1)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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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0  18: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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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황국 식민화 교육장소 진주신사(1)

일제(日帝)가 우리 조선 민족을 일본 신민(臣民)으로 만들기 위해 진주신사(晉州神社)를 진주성내에 건립했다.

우리 민족성(民族性)을 말살(抹殺)하고 전국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기 위해 황민화 세뇌 교육의 장소로 활용한 것이 진주신사이다.

신사(神社)란 일본 고유의 종교인 토착신을 우상화(偶像化)하여 제사지내는 곳을 말하는데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실현한다는 허망한 생각으로 총독부(總督府)가 지시하고 지원해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된다.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자 바로 일본인들은 진주신사 봉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호국(護國)과 충절(忠節)의 장소인 진주 촉석루(矗石樓) 부근에 신사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대정(大正)황제 즉위식(卽位式)을 맞추어 터 공사를 마쳤다.

진주신사가 있었던 장소는 진주소학교(현 진주초등학교)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매월당(梅月堂)이 있었다.
서기 1916년 12월 조선총독부에 신사건립을 청원해 1917년 5월 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가을에 준공식(竣工式)이 있었다.

진주신사 건립비는 60%이상을 조선인들이 부담하였고 강제적 모금도 있었지만 부왜(附倭)조선인들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자발적(自發的) 성금(誠金)도 있었다.

총 공사비 6000원을 거들 때 반발(反撥)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 그 당시 부호(富豪)들을 규탄한다.

1917년 10월 진주신사 준공식(竣工式)을 할 때 조선 총독 하세가와는 축하(祝賀) 전보를 보냈다는 것이다.
1918년 7월부터 경남도지사 사사키는 진주신사 숭경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회장(會長)이 되겠다고 나서니 이는 신사를 중요시한다는 뜻을 표현했다.

1926년 10월 중순경 꾸준히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는 일을 반대하던 일본인 이시이라는 자는 도청이전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주신사 내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말았는데 도청 이전반대 결사대(決死隊)까지 조직했던 조선인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인이 자살하자 진주시민들은 매우 슬퍼하며 일본인 추모비를 건립하게 되는데 참으로 희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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