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뿌리 얕은 나무는 쉽게 쓰러진다
칼럼-뿌리 얕은 나무는 쉽게 쓰러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16 18:29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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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뿌리 얕은 나무는 쉽게 쓰러진다


벌써 가을도 중반인 시월이다. 지난 6일 반갑잖은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찾아와 여수, 부산, 영덕 지방 등 남부지역 일부에 적잖은 피해를 주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합천에는 바람이 좀 세계 불고, 많은 비를 뿌렸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태풍이 우리나라에 도착하기 사나흘 전부터 TV에서 남부지역을 지나간다고 예보를 하고 있어 우리 지역에도 큰 피해가 발생할까 봐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스럽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긴장한 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예상 진로 권에 있는 모든 사람과 가을 벌판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 마을 곳곳의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 정감을 더해주던 누런 감들, 또 마을 주변 과수원에서 미처 수확을 다 하지 못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배 등. 지역 내의 많은 사람과 수확기에 접어든 모든 작물이 바짝 긴장하며 움츠렸을 것이다.

우리 지역은 봄부터 지금까지 비가 몇 차례 내렸지만, 평년 강우량에 훨씬 못미처 가문 날씨였다. 이번에 많이 내린 비는 가뭄으로 배고파하던 합천댐과 곳곳의 소류지에 갈증을 해소하고 배를 불리 주었다. 그야말로 효자 태풍이었다. 그렇다고 피해를 전혀 주지 않고 지나간 것은 아니다. 집 가까이 있는 뒷산 어느 산소 주변의 수십 년 된 소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산소를 덮쳤고, 내가 매일 아침 운동을 나가는 ‘황강 체육공원’의 강 쪽 비탈에서 몸매를 한껏 자랑하며 늘어서 있던 7, 8년생쯤 된 수양버들 10여 그루가 쓰려졌다.

이렇게 태풍의 곁가지 잔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산소 주변의 소나무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 자리가 산등성이어서 수십 년 동안 비바람에 주변의 흙이 떠내려가, 오래전부터 뿌리가 거의 드러나 있었고, 강변 수양버들이 늘어선 곳은, 공원을 조성할 때 강물에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시멘트 블록을 붙여놓은 곳인데, 매년 그 위에 흙이 저절로 쌓이면서 생긴 둔덕이다. 그곳에서 수양버들은 지상의 몸체를 키워왔지만, 뿌리는 일 미터 조금 아래 깔린 블록 때문에 깊게 내려가지 못했던 것이다.

뿌리가 얕아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을 보면서 인간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 출세하고 성공하여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곳곳에서 한평생을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성공하여 잘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실과 노력으로 이 척박한 사회 환경에서도 뿌리를 깊게 잘 내린 사람들이고, 그와 반대로 어렵게 사는 수많은 사람은 성실과 노력의 뿌리가 그들보다 깊게 내리지 못하고 있어 작은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고 쓰러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우리나라 정치 상황까지 연상(聯想)해 본다.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며 싸우는 정치권의 바람은 ‘콩레이’ 같은 자연 태풍보다 더 무서운 태풍이 아닐까 싶다.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고, 피해도 더 많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태풍이 지금도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1945년 일본강점기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건국되면서,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남북 분단이란 특수성 때문에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뿌리를 제대로 깊게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콩레이’가 남부 지역 일부에 많은 상처를 남겼고, 우리 지역에도 뿌리 얕은 나무들을 매정하게 쓰러뜨리고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간 가을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푸르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의 뿌리가 깊게 내려, 더는 이념 갈등으로 인한 정치 태풍이 없어지고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사회가 되기를 갈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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