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율의 詩 산책-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이다
김지율의 詩 산책-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28 18:43
  • 1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이다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 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무얼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중략) 그러나 강정 깊은 물에 돌팔매하자고 떠났거나/ 여름날 그곳 모래치마에 누워 하루를 즐기고 오겠다던 사람들은/ 안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기다림으로 녹슬며 내가 불안한 커튼/ 젖힐 때, 창가의 은행이 날마다 더 큰 가을우산을 만들어 쓰고/ 너무 행복하여 출발점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강정 떠난 사람처럼 편지 한 장 없다는 말이 (장정일, ‘강정 간다’ 부분)

장정일의 등단작인 이 시를 오랫동안 좋아했다.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의 ‘강정’은 시인이 태어나고 살았던 대구의 한 지명이겠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자신의 ‘강정’이 존재할 것이다. ‘찌그러진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꿈꾸는 곳. 그렇게 가봤자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매일 희망하는 곳. ‘외삼촌이 돌아오는 걸 보고서’ 갈 것이라는 기다림이 기다림을 재촉하는 곳. 그렇게 떠난 많은 사람들을 기다렸던 골목에서 이 시를 읽으면 그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문학은 광주민주화와 통일의 민족문학과 소외된 민중들의 노동문학이 한 축이었다면, 장정일은 그와 다른 축에서 외설과 풍자 그리고 역설의 방식으로 모든 체계와 이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는 개인의 가장 일상적인 화법으로 우상이나 기존 문법을 과감하게 해체했다. 장정일 시의 시적 화자들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과 욕망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된 주체들이다. 그러므로 그가 시에 호명한 현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루한 일상들이다.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이 아이러니한 삶의 머리와 꼬리를 물고 일상의 미로 속을 돌고 있는 우리들. 이상과 현실, 상상과 사회적 통념 사이에서 분열되는 자아의 파편들이 장정일 시의 한 특징일 것이다.

장정일은 학벌주의 문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춘기에 소년원 체험을 한 이례적인 시인이다. 이 시가 실린『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 내가 누 누구냐고요/ 아아 무 묻지 마십시오’(「쉬인」), ‘한숨을 쉰다. 이렇게 어려운 시/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며, 한평생/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니! 나는/ 방금 쓴 3연의 시를 찢는다’(「길안에서의 택시 잡기」)같은 시들, 다시 읽어도 좋다. 음란물로 판정되어 폐기처분되었고 아직 재발간이 되지 않은 그의 소설들도 있다.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의 책들을 버리지 않은 이유. 혹은 아름다운 제목의 소설『구월의 이틀』에서도 여전히 장정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 있다. 때로 그는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었으면 좋겠다’는 시도 썼다. 먼저 강정으로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거나 그들의 편지를 궁금해 하는 일. 누구는 알고 또 누구는 모르는 ‘강정’, 너와 내가 떠나고 싶은 향하고 싶은 그 많은 ‘강정’에 오늘도 우리는 가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