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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이관 선생 순국 90주년(1)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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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31  18: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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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이관 선생 순국 90주년(1)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에서 1860년 12월 17일 태어난 이관(李瓘) 선생은 기미년에 선포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초안 작성자이며 격문(檄文)을 기초(起草)한 분이다.

이를 증거할 근거가 많은데 우선 중국학자들이 공동으로 호를 지어 주면서 이 선생의 인격(人格)과 글과 글씨를 보니 압록강(鴨綠江) 아래에서 으뜸이라는 뜻에서 녹초(綠初)라고 지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관 선생이 손병희 선생을 지척(指斥)에서 모셨고 이관 선생의 직분이 천도교(天道敎) 전도사(傳道師) 및 편집원(編輯員)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사실이 이를 증거해 준다.

이는 <독립선언서>의 기초과정에서 깊숙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음이 확실(確實)해 보인다.

3·1운동이 일어난 후 손병희 선생의 말씀에 따라 지리산(智異山)으로 피신했다가 수개월 만에 일경(日警)에 검거되었는데 혐의가 격문(檄文)기초자라고 했으니 이는 다시 말하면 독립선언서 기초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제 9권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919년 당시에는 서울 가회동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천도교 전도사 및 편집원으로 손병희 선생 이종일 선생 등과 함께 3.1독립운동을 일으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 그는 1919년 2월 이종일에게서 대한독립의 취지를 듣고 손병희 선생 등 33인의 명의로 독립선언서의 배부를 승낙하고 지방으로부터 상경한 대표들에게 이를 배부하며 활동하는 동시에 3.1독립운동 당시 배부한 격문 기초자로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11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으나 미결기간을 합하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도 했으며 피신 6개월만에 피체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고 출판법 위반이라고 했으니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는 근거가 된다’

‘그 후 1921년 11월 11일 미국 워싱톤에서 군축문제를 다룰 태평양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승인케 하고자 임시 대통령 이승만. 구미위원장 서재필 등에게 대포권을 주어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대한독립의 승인을 요청하는 독립청원서에 국민대회 대표의 자격으로 서명하고 활동하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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