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문학관 푸른 바다 남해로 떠난 문학 기행
마산문학관 푸른 바다 남해로 떠난 문학 기행
  • 최원태기자
  • 승인 2018.11.01 18:3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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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학 김은영 교수 해설 인문학아카데미 문학현장 답사
▲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은 30일 ‘제26기 인문학아카데미 문학현장’ 답사를 남해 일대로 다녀왔다.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은 30일 ‘제26기 인문학아카데미 문학현장’ 답사를 남해 일대로 다녀왔다. 이 답사는 수강생들의 인문학적 이해도를 높이고 수준 높은 문화 체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마련됐다. 해설은 김은영 교수(남해도립대학)가 맡았다.


주요 답사지는 보리암과 이순신순국공원(이락사)이었다. 보리암이 위치한 금산은 명승 제39호로 지정돼 있으며, 한려수도 한복판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 속의 산으로 불린다. 예부터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빼어난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다. 신라 신문왕 때(683년) 고승 원효가 산 정상 부근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지었는데, 이후 이 산 이름이 ‘보광산’이 되었다.

산 이름을 ‘비단 산’이라는 뜻의 ‘금산(錦山)’으로 바꾼 것은 태조 이성계였다. 왕이 되려는 뜻을 품고 백두산과 지리산에서 소원을 빌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다. 보광산 산신에게 자신이 왕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다고 약속하였고, 훗날 조선의 왕이 되었다. 이성계는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써서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락사는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를 기리고 있다. 원리 이 일대의 바다는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하는 관음보살의 바다라는 뜻을 담은 ‘관음포(觀音浦)’로 불렸다. 그러나 노량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로 불리게 됐으며, 해안에는 같은 뜻의 이름을 가진 사당 ‘이락사’가 세워졌다.

수강생들은 김은영 교수의 해설을 들으며 남해 바다의 푸른 역사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버스로 이동을 하는 시간에는 남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해를 소재로 한 많은 문학작품이 있지만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한편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의 하반기 인문학아카데미 강의는 12월 4일에 ‘신춘문예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최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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