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율의 詩 산책-그 붉은 마음,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안 듣는 거라고
김지율의 詩 산책-그 붉은 마음,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안 듣는 거라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11 18:21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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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그 붉은 마음,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안 듣는 거라고


인간들이 입에 칼을 물고 다니는 것 같아/ 말도 안 되게, 찌르고 베고 보는 거야/ 안 아프지도 못하면서/ 저 아프면 우는 것들이// 예전에, 수술 받고 거덜 나 무통 주살 맞고 누웠을 적인데/ 몸이 멍해지고 나자, 아 마음이 아픈 상태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순간이 오더라고, 약이 못 따라오는 곳으로 글썽이며/ 한참을 더 기어가야 하더라고// 마음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래? 물으면,/ 몸이 고깃덩이가 된 뒤에 육즙처럼 비어져 나오는/ 그 왜, 푸줏간 집 바닥에 미끈대던 핏자국 같은 거,/ 그 눈물을 마음의 통증이라 말하고 싶어// (중략)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는데// 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 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 죄 많고 벌 없는 이곳을 뭐라 부를까/ 내 나라라는 적진敵陣을 부러질 듯 오체투지로 뚫으며/ 몸이 더 젖고 더 해지는 동안,/ 거기 세든 마음이란 건 벌써 길 위에 길처럼/ 녹아버렸겠다 싶더라고// 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 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칼질 좀 하지 마/ 그 붉은 것,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안 듣는 거라고 (이영광 ‘마음1’ 부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 세상이나 타자와의 소통에서 수없이 중첩되고 해체되는 마음. 언제나 그 마음 때문에 생기는 많은 일들과 생각들. 아프고 슬픈 그것, 외롭고 적막한 그것, 분노하고 원망하는 그것, 그 무수한 마음의 결은 아무리 헤아려도 답이 없고 해결책도 없다. 그러므로 예민한 시인에게 이 현실은 ‘온 세상이 상처’이고 ‘아픈 천국’이다.

베이고 상처받은 그 마음이란게 눈에 보이질 않아서 나의 마음이 얼마나 너덜거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에서처럼 무통주사를 맞고 몸이 멍해지자 약 기운이 미치지 못하는 거기, 그 한쪽 구석에 아픈 마음이 오롯이 있다는 것. 육즙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듯 푸줏간 바닥에 미끈대는 핏자국 같은 그 눈물을 ’마음의 통증’이라 시인은 말한다.

세월호 삼보일배의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이가 옷이 다 젖고 신발이 해지도록 절을 하고 또 절을 한다. 부러질 듯 오체투지 하는 몸. ‘죄 많고 벌 없는’ 이 나라에서 그녀가 온몸으로 뚫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그 몸에 세든 아픈 ‘마음’을 우리는 또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이 상처 난 그 마음은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듣지 않는데.

이 시대의 상처들이 새겨지는 곳이 시인의 마음이라면 몸부림치던 그 마음들이 발화하는 현장이 ‘시’ 일 것이다. 하지만 분노와 자책 혹은 어떤 논리로도 세월호 유가족들이나 이 세상의 수많은 ‘마음의 통증’들을 위로할 수 없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배우기가 가장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가 닿길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 가난한 마음들에 그만 상처 주시라. 이제 그만 좀 찌르고, 그만 칼질하시라. 자꾸 피가 세는 이 마음들을 한 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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