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어기기즘’과 ‘지키기즘’
아침을 열며-‘어기기즘’과 ‘지키기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29 18:4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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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어기기즘’과 ‘지키기즘’


수년 전 모 TV방송에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가 있었다. 한번은 거기서 서울시내의 여러 교차로에서 차들이 정지선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조명한 적이 있었다. 여러 차로의 모든 차들이 동시에 다 정지선을 지키고 멈추면 운전자들에게 공짜로 냉장고를 선물하는 재미난 설정이었다. 나도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준비한 냉장고를 다 주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신호위반, 속도위반, 주차위반도 비일비재다. 심지어 옆 차로에서 깜빡이를 넣고 있는 차를 끼워주면 나도 급한데 왜 양보를 하느냐는 듯 뒷차가 크랙션을 빵빵거리며 성질을 부리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주차장이든 길이든 하필 모퉁이에 불법주차를 해서 불편을 겪는 일도 다반사다.

이 모든 일들이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 것들이다. 암묵적인 혹은 공식적인 룰인 것이다. 그런데 이걸 대놓고 어기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거의 ‘어기기즘’(혹은 ‘무시즘’ ‘무시하기즘’ ‘안지키기즘’ ‘뭉개기즘’)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어디 교통관련 뿐이겠는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 이런 ‘어기기즘’ ‘무시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돼 있다. 에티켓이나 윤리 도덕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본분과 질서가, 심지어 법률조차도 무시된다. 그 법을 만든 국회의원도, 그것을 집행하는 관료들도, 그 법으로 죄를 다스리는 법관들조차도 그것을 예사로 무시한다. 회의에서 표결로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도 그 결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수단과 해괴한 논리를 동원해서 뒤집으려는 사람이 있다. 민주주의의 최기본조차도 아주 간단히 무시되는 것이다. 자동차든 공장이든 아무 의식 없이 매연을 내뿜는다. 기준도 규제도 무시된다. 경찰관에게조차 예사로 대든다. 아니, 그 경찰관들조차도 지켜야 할 본분을 무시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이 모든 무시와 어김들의 결과가 어떠한가. 엄청난 불편과 불쾌와 손해가 뒤따른다. ‘지키면 손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어긴다. 점점 더 불편하고 불쾌하고 손해는 커져간다. 악순환이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여실한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반 이상의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은 좌절감에 빠져든다. 소수의 거칠고 시끄러운 악이 다수의 조용한 선을 내모는 형국이다.

지켜야 한다. 인간의 기본, 사회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지키도록 교육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지키기’가 모두에게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어기기스트’들에게는 손해가 돌아가는 구조와 체재를 만들어야 한다. 가혹한 처벌도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서부터 이런 교육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무릇 인간은 순자의 지적대로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고 또한 동시에 맹자의 지적대로 선한 본성도 지니고 있다. 양면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선악가능적 존재인 것이다. 그 중 어느 쪽을 누르고 어느 쪽을 드러낼 것인지는(그 활성화와 비활성화는)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의 선택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 결과는 우리의 선택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모든 사람, 모든 사회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잘 지키는 사람들, ‘지키기스트’들도 많다. 상대적으로 잘 지키는 나라들도 많다. 싱가포르나 독일 같은 나라는 자주 칭찬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우리에게 그 많은 악행을 저지른 일본조차도 ‘지키기’에 있어서는 모범적인 구석이 적지 않다. 모델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저급과 저질을 ‘그런가 보다…’ 하고 감내해야 하는가. 누군가 깃발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지킬 ‘수’(守)자 하나가 그 깃발에 적혀 우리 사회의 하늘에 펄럭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수’ ‘지킴’은 ‘고급’으로 이어진다. 사람도 그리고 사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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