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또 한분의 어머님
칼럼-또 한분의 어머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06 20:27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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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정/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강미정/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또 한분의 어머님


겨울의 문턱에서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 길에 노랗게 물들어서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니 벌써 올 한해도 지나가는 것 같다. ‘올 한해 내가 보훈섬김이로 어르신들과 어떤 일들을 하면서 보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어머님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방문한 대상자 분이다. 그 땐 아주 건강하시고 집안일도 잘하시면서 “우리 집에는 일할 것 없으니 와서 심부름과 병원에만 같이 가주면 되고, 내하고 말벗만 되어 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연세가 들어 작년부터는 집안일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시고 힘이 없어서 걸음걸이도 시원찮고, 여러 가지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끔 딸이 와서 엄마의 밑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가면서 나에게 늘 부탁을 하고 간다. 우리 어머니 잘 좀 돌봐 달라고…그러면 “네, 잘 돌봐드릴게요” 라고 하며 가끔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요즘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옛날엔 자식들이 각자의 부모님만 잘 모시면 되었는데, 이젠 내 부모를 다른 사람과 함께 돌보고 또 사회가 함께 돌보는 ‘책임의 나눔’으로 변해가는 그 중간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보훈가족 어머님께 최선을 다하듯이 ‘나도 살아계신 나의 시부모님께 한번 전화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이 일을 하면서 감사한 것은,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도 어르신처럼 힘이 없어지는 나이가 되어 갈 것을 생각하며 미리미리 건강관리를 해야겠다.’고,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소홀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은 어머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갔는데, 본인 몸을 아예 씻지도 못하시는 모습에 안타까워 어머님의 온몸을 씻기다보니 내 몸을 씻을 힘이 없어졌지만 나로 인해 시원해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에너지를 충전해 본다.

어쩌면 나는 이 일이 나에게 사명감처럼 다가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랑과 결혼했을 때, 내가 모신 건 시부모님들이 아니라 시조부모님들이었다. 이미 나이가 드신 분들과 함께 신혼생활을 하는 게 싫을 수도 있지만 난 이상하게도 더 잘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다 보니 나라에서 ‘효부상’이라는 것도 받고 동네 어른들로부터 예쁨을 받아왔다. 그때부터 그렇게 어르신들과 친근함을 쌓아 와서 그런지 지금의 보훈섬김이 일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 만나는 어르신들마다 내가 품어야 할 사명감으로 받아들여지니 이 일을 기쁘게 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 간절하게 어머님이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어머님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첫 대상자라서 애착이 가는 걸까? 또한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내가 어머님께 많은 사랑을 드린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것 같다. 결국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겨울의 문턱 또 한분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힘차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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