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
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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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섬진강을 사이에 둔 하동과 광양의 6월은 청매실로 시작해서 황매실로 끝난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5시전부터 눈을 비비며 밭으로 가면 어슴프레한 가운데도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탐스러운 가지들이 있다. 한손으로 그 가지를 잡고 다른 손으로 한 움큼씩 따 담노라면 마태복음 7장이 절로 떠오른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맞는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개량종나무에서는 굵기가 유치원생 주먹만한 장아찌용 매실이 열리고 재래종나무에서는 씨알이 꼭 도토리나 개암만 하다. 종자도 종자지만 나무에 거름을 하고 약을 치고 전지를 하고 풀을 베며 정성껏 가꾼 나무의 열매는 마치 공들여 화장한 신부 얼굴 같이 뽀얗고 곱지만, 거름 한번 안 하고 약 안치고 전지 안 하고 풀도 안 벤 나무에 열매는 새카만 개기름에 잔뜩 기미낀 노숙자 얼굴 같다.

매화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러기에 언뜻 꽃 핀 나무만 봐서는 그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른다. 꽃이 지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어도 전문가가 아니고는 쉽게 구별할 수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수확기에 가서 그 열매를 보고서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해서 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지난 봄 친정오빠가 집주변에 친정아버지가 심은 30년생 매실나무 20여그루를 베어버렸다. 이유인즉 나무가 재래종이라 열매의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부친이 선친이 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열매와는 상관없이 그 나무들은 그 자체가 바로 내게는 아버지였는데. 이는 나무를 자르는 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좋은 나무라 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나쁜 나무라고 하니 우리도 그 열매로 그 나무를 평가하고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매화꽃이 매혹적이어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보잘 것 없고 일손만 많고 돈도 안 된다면 농사를 짓는 농부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톱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유실수 나무는 꽃으로 평가받는 관상수와는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화나무는 이제 이름도 매실나무로 개명될 정도로 꽃에서 열매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매화나무로 부르건 매실나무로 부르건 그 꽃이고 그 열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대표성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이다. 이제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고 꽃만으로도 환대받고 칭송받던 호시절은 지났다.

우리 인생도 이 매화나무 신세와 너무 흡사하다. 꽃과 잎만 무성하다고 성공한 인생으로 대접받던 때는 끝났다. 황혼이혼은 그 단적인 예다. 비록 꽃도 잎도 보잘 것 없더라도 유익한 열매를 맺어 공동체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고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우리는 그를 좋은 나무라고 칭송한다. 장학금을 내놓은 젓갈 할머니들 김밥할머니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비리 약을 안 쳐 까만 비리똥이 앉자 인건비가 안 나온다며 아예 따지도 말라고 한다. 잘려나간 토종매실나무 밑둥치에 걸터앉아 가지에서 따지도 않는 굵은 열매들을 바라보자니 어쩌다 이런 현상이 생겼으며 이게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따지고 싶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 본문으로 설교를 수 백 번도 더 들었을 이명박 장로님, 당신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권장하고픈 수종(樹種)은 이대통령 재임기간 중 96조원의 감세의 혜택을 보는 대한민국 상위 3%에 드는 가정, 그렇다면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지를 당해야할 가지들, 그럼 우리 출산율은 참 사람과 나무는 다른가. 아,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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