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바꾸기즘’과 ‘지키기즘’
아침을 열며-‘바꾸기즘’과 ‘지키기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12 18:33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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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바꾸기즘’과 ‘지키기즘’


볼일이 있어 서울 인사동을 다녀왔다.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진 관광명소라지만 거기가 왜 관광지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 다 사라져버렸다. 외국 친구가 놀러온다면 나는 차라리 가회동을 추천할 것이다. 거기엔 거기에만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웃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유럽의 도시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베른은 중세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서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 (현대도시의 좋음/매력과는 또 다른 좋음/매력이 거기 있었다.) 예전의 것, 오래된 것, 특히 그중 좋았던 것, 그런 걸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간다는 것은 하나의 가치행위에 해당한다고 느꼈다. ‘좋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다. 내가 혹은 여러 사람이 좋다고 느끼면 그게 기준이 되는 것이다. 베른의 고색창연한 모습은 그렇게 여러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느낌은 미국 보스턴에 살 때도 느낀 적이 있다. 특히 건국 초기의 영국적 면모를 잘 간직한 찰스타운과 커먼웰스 에비뉴, 뉴베리 스트리트 등이 그랬다. 일본의 카마쿠라나 야나가와 같은 곳도 그랬고 중국 곳곳에 남아 있는 ‘청대거리’도 그랬다. 그런 것들이 그 특유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그런 식의 ‘보존된 과거’는 이른바 광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사회에는 소중한 옛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식(나는 이것을 ‘지키기즘’ ‘간직하기즘’이라 부른다.)이 별로 없다. 희박하다. 일부 계층에서는 아주 강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들만의 일’이고 그게 저변에 깔려 보편적-일반적인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한다. 닥치는 대로 너무나 쉽게 바꿔버리고 없애버린다. 거의 ‘바꾸기즘’ ‘없애기즘’ ‘팽개치기즘’ ‘버리기즘’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어쩌면 저 신라의 김춘추가 대표적인 바꾸기스트-버리기스트인지도 모르겠다. 신라 고유의 복식도 제도도 그리고 이름조차도 모조리 당의 것으로 바꿔버렸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사라져버린 옛 왕조들의 옛 도읍을 무척 아쉬워하는 편이다. 서라벌, 사비성, 평양성, 그리고 개경…. 그게 잘 지켜지고 있다면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색이 없었을 텐데…. 그 소실이 침략이나 패배의 불가피한 결과라 할지라도 만일 지키기즘의 정신이 있다면 당연히 복원작업이 시도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뀌고 없어진 것이 어디 도시뿐이겠는가. 바꾸기즘과 없애기즘은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습관처럼 스며 있다. 그렇게 해서 소중한 수많은 것들이 소리 소문 없이 알게 모르게 시나브로 사라져 간다. (이른바 ‘고향’이라는 것도 그렇다) 보존되느냐 없어지느냐의 결정적인 갈림길은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다. 소중한 줄 알면 지키게 되고, 그걸 모르면 쉽게 바꾸고 버리게 된다. 지키기즘과 바꾸기즘은 다른 말로 ‘소중히여기기즘’과 ‘하찮게여기기즘’으로 불러도 좋다. 우리사회에서는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하찮게 여겨진다. 그것이 사람의, 사회의, 그리고 온갖 것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심지어 부모도 자식도 조강지처도 하찮게 여겨진다. 선생도, 학생도, 학교도, 직장도…하찮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자연도 환경도 즉 강도 산도 물도 나무도 공기도, 극단적으로는 사람의 생명조차도 하찮게 여겨진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줄 알고 지켜나가려는 의식이 그래서 철학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은 너무나 많고 그 대부분은 한번 없어지면 다시 되찾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다. 바꾼다고, 새것이라고, 반드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역사가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감언이설이다. 발전이란 치열한 노력으로만 힘겹게 얻어낼 수 있는 고귀한 결실인 것이다. 그 결실은 많은 희생을 거름으로 삼는다. 과거의 많은 소중한 것들이 그 희생으로 사라진다.

좋은 것은 반드시 앞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뒤쪽에도 좋은 것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고개가 뒤로도 돌아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사회에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한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전통을 논하는 가다머철학과 새로운 사회를 논하는 하버마스철학이 싸울 필요가 없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만사에 균형이 필요하다. 그것이 중용주의를 대체하는 나의 균형주의다. 그것이 다양성의 기반이 된다. 다양성은 아름다움의 한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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