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에 소통을 달하다
쉰 살에 소통을 달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22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쉰 살! 참 난감한 고비였다. 어렵기로는 마흔 후반이었다. 마흔 최후반 어느 날 나의 현주소를 봤더니 맙소사, 아무 것도 아니었다. 중편 소설 두 편으로 겨우 소설가로 등단은 했지만 그걸로 끝난지 십 년을 지나고 있었다. 미발표 장편이 다섯 편이라지만 출간해줄 출판사가 있을리 없었고 앞이 컴컴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가족! 남편은 시인인데도 시를 못 쓴지 오래고 딸은 초딩, 아들은 중딩. 억지로 위로를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곧 더욱 컴컴해질 거란 예감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다 두고, 어떨결에 쉰에 턱을 걸고 보니 내 한 몸으로도 갈길은 멀고 험악할 것이었다.

 악운이란 엎친 데 덮쳐야 제 맛이다. 시골에서 비교적 잘 계시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차례로 존재를 드러내셨다. 한 분은 알콜중독, 한 분은 교통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의 위기에 닥쳐선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게 마련. 나도 딱 죽어버리겠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어린 날부터 친한 친구를 붙들고서였다. 내 인생이 단순해서 그랬든지 내 비명도 간단했다. 다 두고, 장편소설을 단 한 권이라도 내면 다 접어주고 다 틀어주고 나머진 기꺼이 끽 소리 안 하고 안고 가겠다고 친구에게 비명을 질렀다.

"얼매 있으모 책을 내노? 딱 그거만 말해라, 책만 내모 되겄다쿠모." 나는 딱 부르지게 당당히 요구했다, 내 친구니까! 내 친구는 내 친구답게 요구를 쿨하게 들어주었고, 나는 출판사 허가를 냈고, 첫 장편소설 "나비, 사바나로 날다"가 출간되었다.

책만 내면 죽어도 여한이 없어야 되겠지만 사는 게 뭔지 더 잘 살고 싶어지더란 거다. 근데 어떻게? 몇 군데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에서 기사화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판매에는 거의 아무 작용도 해주지 않고 광고는 꿈도 못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잘해 보고 싶은 기대에 뭔가 잘 될 것도 같은 터무니없는 낙관까지 나를 사알살 부추겼다.

이번엔 나는 이미 장편 출간 진행에 아주 구체적으로 도움이 된 아들을 힐금거렸다. 아들은 중 2학년으로 평소 학습은 물론 자신이 해야하는 일에는 놀라운 집중력과 추진력을 보여준다. 거기다 변덕부리지 않은 뚝심까지 겸비했다.

 "어머니, 트윗을 시작하셔요. 조급하게 생각마시고. 장기적으로 볼 때 어머니께 유리합니다. 어렵게 한 길로만 살아오셨고 맨션도 글이니까 소설을 쓰시는 것처럼 하시면 될 걸요." 한 나절 내내 이어진 아들과의 회의 끝에 트윗이 가능한 휴대폰을 구입했다. 휴대폰이라곤 그게 처음이었다. 그게 작년이다. 방콕해서 글만 쓰다보면 휴대폰이 그다지 필요없었다.

 간단한 조작으로 아들은 트윗 계정을 개설해 주었다. 그리고 맨션(말씀)을 올리고 관리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정말 간단했다. TV를 틀고 꺼는 조작만큼 간단했다. 저기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말을 걸듯 맨션을 올리면 꼭 그렇게 날으는 새처럼 어딘가에서든 내 말에 응답을 하는 이가 몇 사람씩 있었다. 신기했다.

 어떤 말을 올릴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 적어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아들의 격려대로 나는 어렵게 한 길만 걸었다보니 사실 별로 할 말이 많은 건 아니었다. 그저 그날 아침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다가 '땡기는' 기사가 있으면 내키는 대로 몇 자 적어 보내면 됐다. 딱히 할 말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올린 맨션을 보고 들으면 된다. 약 두어 달 전부터는 내 책을 광고하기 시작했다. 좀 쑥스럽고 속을 보이는 것 같아 송구스러웠지만 정직하고 진실만으로 하면 된다고 스스로 용기를 가졌다.

용기가 넘친 나머지 또 다른 사고를 쳤다. 두 번째 장편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를 출간했다. 첫 장편 출간 때 몇 군데 기사화해주던 신문에서도 이번엔 소식이 없었다. 기사화되어봐야 별 효과도 없더라는 의기소침에 나도 첫 책에 비해 그다지 버둥거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트윗에 내 책과 출판사에 대한 특징을 정직하게 적어서 올렸다. 놀랍게도 판매와 바로 연결이 되었다. 이런 효과를 확인한 첫날 아무도 몰래 나는 울었다. 보이지 않지만 착한 마음들이 이어져 있다는 확신에 감사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간엔 눈물조차 말랐었는데…. 쉰 냄새를 풍기며 늙어갈 뻔한 내 쉰 살은 트윗과 함께 봄날 새싹처럼 이렇게 다시 살아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