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이 낳지 않는 사회
시론-아이 낳지 않는 사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02 19: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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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아이 낳지 않는 사회


옛 사람들이 어떤 동네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일단 그 동네에 들어가서 하루 저녁 자본다고 한다. 밤 새 자면서 그 동네 여기저기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 다음 날 당장 이삿짐을 싸서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만약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동네를 떠나 다시는 그 동네로 발걸음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아이울음소리가 많이 들린다는 것은 그 동네가 그 만큼 살기 좋고 넉넉하기 때문이고,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여 아이울음소리는 곧 그 동네의 미래지표라 할 수 있다. 아이울음소리가 왕성한 동네는 미래도 흥성할 것이고, 아이울음소리가 끊어진 동네는 미래도 끊어질 것임이 자명하다.

우리는 이제 꿈에 그리던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잘사는 부자 나라가 되었고, 트럼프도 부자나라에 자기들의 혈세를 낭비할 수 없다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 하고 있다. 세계에서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이상의 국가는 28여 개국이지만,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국가로서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7개국뿐이다. 이는 세계무대에서 대단한 우리의 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하자원도 없고, 땅덩어리도 좁은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경제적 규모를 보인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이런 의문이 든다. 정말 우리 서민 한 사람 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는가? 오히려 배고프고, 빚에 쪼들리고, 미래가 캄캄하고, 하루하루가 힘겨운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통계적으로 드러난 대단한 수치가 정말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처량한데 나라는 부자라고 하는 이런 우리의 미래가 과연 희망적일까, 절망적일까?

이렇게 부자인 우리나라에서 미래사회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으려하고, 결혼한 부부들도 애기를 낳지 않으려 한다. 왜냐고 물으면 자기들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애까지 낳아서 키우느냐는 것이다. 당장 살아야 할 주택 주거문제, 아기를 키울 때 들어가는 비용, 학원 및 과외비, 그리고 무한 경쟁사회에 내몰려 휘둘려야 하는 아기들의 미래가 불을 보듯 빤한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는 반문들이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이를 낳으면 현대판 노예가 될 것이 빤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는 것이다. 가진 사람들은 더 탄탄한 올가미로 없는 사람들을 옭아매고, 공포에 가까운 여러 갑질들의 형태를 보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희망찬 삶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단단한 계급 이익의 결속아래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풀어 헤쳐 휘두른 허리끈에, 까닭 없이 자기 자식들이 얻어터져도,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 알아서 기며 살아가야 하는 돈과 권력의 현대판 노예가 될 것이 빤할 것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는 반문들이다. 이런 소리가 주변에서 그저 우스갯소리로 한두 번 스쳐 듣는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처절하게 읊조리는 일상의 하소연이고, 볼 때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우리 때는 그래도 저마다 모두 가난하여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과 열정을 보였지만, 지금 3만 달러 시대는 과거 봉건시대 신분사회와 마찬가지로, 출생부터 금수저 흙수저로 고착시켜, 젊은이들로 하여금 절망의 자기 인식을 갖게 하여, 아예 처음부터 스스로의 미래를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현상의 지표 중 하나가 작년에 보였던 출생률이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라든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우리의 자조적 말들은 사실 차별 없이 더불어 동등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갈망이리라.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도 좋고, 미국 중국 일본 등 국제관계도 잘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넉넉한 삶이고 안정적인 미래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태어난 아이가 없는데 어떻게 나라를 이어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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