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시리즈-역사의 현장 '진주대첩광장' 조성
신년기획 시리즈-역사의 현장 '진주대첩광장' 조성
  • 배병일기자
  • 승인 2019.01.03 17:17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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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4대 현안 공감과 소통으로 해결한다

▲ 조규일 진주시장이 진주대첩광장 공사현장을 방문한 모습.
(2)진주대첩광장 조성사업

진주대첩광장 소통·공감 화합의 공간 탈바꿈
진주역사 부각 관광자원·구도심 활성화 기여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진주대첩의 역사성 부각과 호국 충절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진주시는 2001년 최초 사업이 검토됐다. 2017년 7월말 총600억 원으로 보상(108필지 81동)과 철거작업이 마무리 되면서 사업이 활기를 띄었다.

진주대첩광장은 진주성과 남강을 연계한 진주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해 관광 상품화 한다는 계획도 담고 있다.
2017년 12월 문화재 시굴조사 결과 외성 기단석이 발견되어 올해 4월부터 문화재 정밀발굴조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기 조사구역외에 진주내성과 연결된 외성의 정확한 위치 확인과 축조방법, 역사적 고증을 위해 기 발굴된 외성의 동ㆍ서측에 대한 추가 조사 예정으로 있다.

▲통일신라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 공존하는 문화재 보고=지금까지 발굴된 유구와 출토유물을 보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기 다른 형태의 유구가 나왔다. 먼저 진주대첩광장의 중앙부에서 대형 배수로와 다수의 기와편을 통해 당시 이 일대에 기와로 된 건물지가 있었으며 배수로는 그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배수로 안에서 출토된 기와편은 통일신라시대 8 ~ 9세기로 조사대상지역내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다.

남쪽으로는 토성이 조성되는데 층위는 크게 하부층과 판축토, 성토층으로 구분된다. 하부층에서는 9~10세기(신라 말 ~ 고려 초)의 기와편이 출토되었고, 기단석렬 층에서는 고려전기 11~12세기대의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토성은 고려 전기에 추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진주성 외성(석성)이 토성 동쪽방향으로 조성되는데 그 하부에서는 조선전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임진왜란 직전에 확장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전란 및 자연재해로 인해 몇 차례 수축이 있었다.

이처럼 진주성은 한 공간에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 통해 화합의 광장으로 조성=진주대첩광장 추진과정에서 갈등도 있었다. 2015년 12월 설계공모방식으로 제시한 광장조성사업의 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렸지만 문화재 조사과정에서 진주 외성 등, 진주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300년 진주 역사와 문화유산을 얻었다. 앞으로 공감과 소통을 통해 시민 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여 갈등이 아닌 시민이 화합할 수 있는 광장을 조성한다는 것이 진주시의 입장이다.

문화재 조사결과와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 심의내용을 바탕으로 진주내성과 연계한 외성 복원 등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이와 병행하여 관련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공감대 형성 후 진주대첩광장 조성방안을 마련하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진주대첩광장은 진주성과 더불어 진주의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지역의 문화 유산이며 관광자원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역사성 부각과 호국 충절정신을 계승하고 이번에 발굴된 진주외성, 토성, 기타 유적 등을 잘 보존하여 천년고도 진주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진주성과 남강을 연계하여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관광객유치는 물론 원도심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는 예산, 문화재조사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20년 말 준공을 예정하고 있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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