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평등 사회, 저절로 오지 않는다
성 평등 사회, 저절로 오지 않는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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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란/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
얼마 전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를 보며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가슴 한 곳에서 바람이 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용불량자로 자신의 신분, 지문까지 철저하게 숨겨가며 하루하루를 숨죽이며 간신히 살아야 했던 선영의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선영의 얼굴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의 힘든 삶이 오버랩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지 모를 불만으로 힘들었고 경쟁 사회에서 더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들어서, 다시 태어나면 “꼭 남자로 태어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낮은 여성의 처지나 지위를 실감하며, 남편에게 “다음 생에도 꼭 만나자. 나는 남편으로 너는 아내로”라는 단서를 달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는 생물학적인 남성을 원했던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다음 생에서라도 되고 싶은 대상인 남성은 사회·문화적인 차원의 남성쪽으로 더 원했을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낮은 지위로 인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은 우리 사회·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여성이다. 공적인 영역보다는 사적인 영역에서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해야 하고, 제도와 관습에 순응해야 불똥이 튀지 않았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에서 얘기하듯 여성들은 힘들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그 회사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현상은 2012년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15세 이상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50%에 이르렀지만, 임금은 아직까지도 남성의 68%에 머무르고 있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했을 때와 벌써 20여 년이나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시 ‘화자’의 선영을 떠올린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서 쫓기다 결국엔 건물 옥상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한다. 기차 길에 떨어져 죽은 선영의 여전히 핏기 없는 얼굴에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갔다. 긴 시간 가슴 졸이며 살인을 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생을 훔쳐서 살아야 했던 그의 고단하고 힘들었던 짧은 생에는 비로소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힘들게 지위를 향상시키고 남성과 다름없이 똑같이 주류로 인정받기 위한 지난한 시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되었다. 단지 한 사람의 인생을 단면으로 보여주었지만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견고한 가부장제의 틀과 약자의 그늘진 삶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여성의 불평등한 삶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성 평등의 기준이 기존의 남성과 위치가 같아지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가 쉽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여성운동이 여성권익을 향상시키는 활동들이 이슈 파이팅이나 기존의 남성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 평등 사회로 가는 길을 여성 혼자만이 아닌, 남성들도 함께 기꺼이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아직까지도 성 평등으로 가는 길이 기존의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평등해지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생각부터 지양해야 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해 지는 사회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오랜 세월을 거슬러보면, 조금씩 진화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긍정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많은 시간, 많은 과정을 겪은 페미니스트를 위시한 사람들의 ‘합의’가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진화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말고, 공부하고 사유하고 토론하고 제안하면서 그때 그때 사회 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활동들을 꾸준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늘 곁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이고, 함께 만들어가는 성 평등한 사회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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