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만들면 일이 생긴다(生事事生)
일은 만들면 일이 생긴다(生事事生)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4.24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숙/시인
“엄마, 이분 잘 알아요?”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명함을 하나 내밀며 물었다. 취나물을 데치다 말고 손에 물기를 훔치며 받아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딸이 다가와 그걸 꺼내들며 다시 물었다. 이분을 얼마나 잘 아느냐고.

그때사 그 이름을 제대로 봤다. 아는 이어서 아는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되물었다. “그런데 이분 명함이 왜 너한테 있느냐?”고. 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일과의 마지막 수업으로 창의적 체험학습을 재밌게 하고 있는데 방송으로 인성부장이 찾아서 엄청 놀라고 속이 상했다며.

그렇게 방송실로 가서 이 학교폭력전담경찰관과 면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분이 엄마를 안다고 하던데”라며, “내가 잘 운다고 왕따나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 있는지 묻고 꿈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난 역사학과 가서 박병선 박사와 같은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니까, 참 대단하다고 하시대! 이게 끝”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나의 표정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던지 아이는 “별일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라는 말까지 더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에 신경이 더 쓰였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오전 일찍부터 오후까지 계속 O경장 번호로 전화를 넣어도 통화가 안 되었다. 게다가 그때 담임이 전화를 했다. 어제 이런 일이 있었던 걸 알고 있느냐고.

통화도 안 되는데다 이런 전화까지 받으니 하도 화가 치밀어서 간략한 문자를 남겼더니 ‘학교생활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지금은 경찰청에서 회의 중이니 내일 통화하자’고 답이 왔다. 그래도 속이 안 풀렸다. 상담 경위가 가장 궁금했는데 그걸 모르니까 답답하기만 했다.

다음날 오전 일찍 전화가 왔다. 지난 번 전수조사과정에서 어떤 한 명이 자기 반에 잘 우는 아이가 있다며 우리 얘 이름을 써서 면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파심에 만났는데 꿈도 대단하고 학교생활도 아주 예쁘고 잘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담임에게 이 이야기들을 그대로 다 전해야 했다.

그러자 ‘일은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은 생략하면 일이 생략된다(生事事生省事事省)’는 명심보감의 저 경구가 절로 떠올랐다. 만약 중학교 배정 단계에서 학생이 희망하는 학교를 지원만 받았더라도 딸아이가 울면서 이 학교를 안 다녔을 것인데. 전신주 하나 거리도 안 되는 코앞에다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두고 매일 편도 30분이 넘는 길을 등하교 하자니 여린 가슴 속에 뜨거운 열이 채일 법도 하지않는가.

이처럼 학생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학교와 교육행정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불합리한 교육제도가 아이 눈에다 눈물을 만들고 그 눈물은 친구의 관심 덕분에 또 이런 해프닝을 만들었다. 이는 “어찌 하나 같이 아이들이 다 자기를 닮아서…”란 내 연발탄이 새벽 4시에 발사되는 바람에 우리 부부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개인이건 단체건 후광효과보다 낙인효과는 몇 배가 더 무섭다.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 피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요즘은 어떻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별것도 아닌 일로 한번 낙인이 찍히면 그 당사자는 가히 영구적인 그 주홍글씨를 제 얼굴 제 등에다 새긴 채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지난 20일 교과부는 올 1-2월에 실시한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를 교과부 홈페지에 공개하고 오는 27일부터는 각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고 했다. 교과부의 의도와는 달리 일벌백계의 계도효과보다는 폭력학교라는 낙인효과를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아이의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교육이 정말로 학생들의 장래를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어떤 경우든 어린 아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해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해서는 설문조사 결과 공개보다도 학생들은 살벌한 경쟁으로 내모는 현행 우리 교육제도의 개선이 훨씬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