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민비시해와 매천야록(2) - 경남도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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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민비시해와 매천야록(2)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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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7  1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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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민비시해와 매천야록(2)

민비(명성황후1851-1895) 고종의비 여성부원군 치록의 딸 8세에 부모를 여의고 가정이 빈한하여 고생이 많았으나 재주가 비상하여 정략도 풍부하였는데 대원군의 부인 민비의 추천으로 16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고종비가 되었다. 1922년부터 조성되어 약44ha 면적에 2천여종의 수목이 전시된 홍릉수목원은 서울시 동대문구에 있는 임업시험장 구내에 조성되었다. 홍릉수목원은 평일에는 정해진 시간에 예약을 받아 개방하고 주말에는 자유로이 견학된다. 수목원 입구에서 본관까지 직진해 우편 숲길로 돌아가면 고종이 목을 축였다는 어정(御丼)이 나오고 수목원 팻말을 지나 오르니 홍릉의 표적이 나타난다. 유래를 적은 표지판 뒤로 풀숲이 작고 낮은 비석 하나가 외따로 오뚝 서있다. 고종이 죽은뒤 경기도 남양주 홍릉에 이장 조성되기 이전 전까지 왕비 민씨는 이곳에 묻혀있었다.

1895년 8월 20일(양 10월 8일) ‘을미사변‘으로 살인사건의 피해자로 불에 타서 온전한 형체마저 갖추지 못해 재를 넣어 비단으로 된 어복(御服) 수십벌로 여러번 감아 재궁(梓宮)에 넣은채로 말이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이었다. 한나라의 왕비가 난입한 외국 공사 일당에 칼을 맞아 죽었다. 아무리 무력한 왕실 허황한 권력이였어도 500년을 이어온 주권 국가가 그토록 어이없이 능욕당한 것이다.

조선 말기 황현(黃玹)이 집필한 “매천야록”에서 전하는 사건 현장은 다음과 같다. “궁중에 횃불이 켜있어 대낮 같았고 이경직에게 민후의 거처를 묻자 모른다고 말한 후 양손을 잘라 죽이고 이때 민비는 옷장뒤로 숨었으나 그들은 민비의 머리를 잡아 끌어내었다. 고무라(村室)의 딸은 민비를 보고 확인 민비는 연달아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일병들은 민비를 칼로 내려쳐 그 시신을 검은 두루마기에 싸가지고 록산 밑 수목사이로 가서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태운 후 그 타다 남은 유해 몇 조각을 주어 땅에 불을 지르고 매장하였다. “민비는 20년 동안 정치를 간섭하면서 나라를 망치게 하여 천고에 없는 변을 당한 것이다” 고종원년(1864)부터 한일강제병합(1910)까지 47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쓴 6권7책의 ‘매천야록’은 변방의 지식인이 양심과 의기로 완성한 기록이다. 당대의 어떤 사료보다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 매천야록은 숲속에서 보이지않은 어떤 숲을 보여준다. 숲의 비밀은 아름다운 듯 위험하니 역사가 꼭 그러하지 않은가?

“명성왕후는 총민하고 정략도 풍부하였는데 언제나 고종의 옆을 떠나지 않고 미치지 못한일을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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