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나날이 새해
아침을 열며-나날이 새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29 19: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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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나날이 새해


“매일 아침, 마음이 새로워지면 매일이 새해다. 새로워진 마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축하할 일이다” 이 말은 일본의 유명한 경제인 미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한 말이다. 심기일전이라는 말도 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얻는다’는 속담도 있다. 결국 인생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귀한 진실이다. 마음 먹기에 달린 이야기라면 저 유명한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멀리 중국으로 가서 불교의 진리를 배워 와서 조국의 백성들을 위로하고자 길을 떠난 원효는 동굴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겠다.

전깃불이 밤낮 구분을 없애버린 오늘날에도 밤에 동굴은 캄캄하다. 하물며 원효가 살아 숨쉬던 시대에 동굴 안이란 칠흑 같은 어둠이었을 것이다. 먼 길을 타박타박 온종일 걸어온 후이니 얼마나 잠이 달았을까. 피로를 안고 자던 꿀잠을 깨면 당연히 목이 마를 것이었다. 비몽사몽으로 여기가 동굴인지 평소 거주하던 암자인지 도통 구분이 안 되고 갈증만 기승을 부렸겠다. 이에 원효는 손을 더듬어 물을 찾았고 용케 바가지 같은 것이 손에 감촉되고 담긴 물소리가 또르르 들렸겠지. 그 또르르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을까…냅다 바가지를 들어 물을 달게 마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웬걸, 아침에 동굴 속으로 빛이 들어와서 잠을 깬 원효는 보기에도 섬뜩한 해골을 발견한다. 총명한 원효는 그것이 간밤에 달게 마셨던 물이 담겨져 있던 바가지라는 걸 깨닫곤 물을 도로 토해내고 혼비백산 동굴을 나와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을 겸해서 다시 중국으로 향했겠지. 얼마가지 못해 원효의 총명함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뭔가를 깨달았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같은 바가지의 물이 지난밤에는 그렇게 달더니 잠을 깬 아침에는 토할 정도로 재수 없는 물맛이 되었던가 하고 탄식했던 것.

원효는 요석공주가 반할 만큼 상남자이기도 했으니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새로운 깨달음을 거두며 나무그늘을 찾아드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요악하자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로 원효는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그 사이에 설총이라는 또한 총명하기 그지없는 아들을 생산했다. 주지하듯 설총은 ‘이두’라는 글자를 창안해서 서민교화에 힘썼다. 원효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의 대중화이다. 특히 설총을 나은 이후부터 원효는 더욱 자유분망하게 불법을 설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매사에 거리낌이 없을 때 행복하고 진실한 삶도 가능하다는 요지의 설법을 했고 그것으로 노래도 만들어 보급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건전가요 보급이 되겠다. 가난한 사람과 아이들에게까지 발 닿는 곳마다 설법을 행했다. 길을 걷다가도 버릇없는 아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낭낭한 목소리로 올바른 길을 설했겠지. 그는 서민을 위한 저술활동도 진짜 활발하게 했다. ‘금강삼매경론’, ‘화엄경종요’, ‘금강반야경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저술을 남겼다. 왜 갑자기 도올 선생님이 생각나지? 두 분 다 우리나라 학자라는 사실이 무척 행복하네.

원효 이야기도 더 하고 싶고 도올 선생님 이야기는 더 하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 하지만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사실 과중한 업무(?)로 좀 많이 우울하고 짜증이 났었는데 원효와 설총과 요석공주와 도올이 한꺼번에 마구 상기되는 이제쯤 마음이 완전히 즐거워졌다. 진짜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친절을 따발총으로 쏘아댈 자신이 팽팽해졌다. 까짓것, 좀 보기 싫은 건 슬그머니 못 본 척하고 개입해서 상황을 호전시킬 기회에는 원효와 도올을 내 마음속으로 서둘러 불러들여서라도 적극적이자. 매일매일 마음을 새로이 세워서 매순간을 새해 아침으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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