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야기
이름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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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IT교육 컨설턴트
사람들의 이름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애정이 보이기도 하고, 출생의 내력이 담겨 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름이 품은 뜻과 지금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산책길에 상가 앞을 지나다 보면 간판에 영어가 어지럽게 씌어 있다. 어디 간판뿐인가. 요즘은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대신 영어 이름 한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말선(末善)’이는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살던 소꿉동무의 이름으로 여기에는 아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애타게 기다리던 손자 대신 손녀가 태어나자 말선이 할아버지는 이제는 딸은 마지막이라는 바람을 친구의 이름에 담았다. 말선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말선이 어머니는 그 뒤로도 딸을 둘이나 더 낳고서야 아들을 낳았다. 몇 해 전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낚시를 갔다가 예쁜 새끼 붕어를 살림망 가득 잡았다. 꿈속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말선이가 반가워 나는 잡은 붕어를 모두 건네주었다. 몇 달 뒤 말선이가 세 번째로 늦둥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안하게도 그것이 말선이의 딸 태몽이었던 모양이다.

‘문지(問知)’는 부르기도 좋고, 예쁘고 뜻도 깊은 이름으로 중학시절 국어를 가르치던 여선생님의 이름이다. 딸이 귀한 집안에 선생님이 태어나자 한학을 하신 그의 할아버지와 외국 유학을 다녀온 아버지가 마주 앉아 뜻도 깊고, 시대감각에도 맞는, 현대적인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집안의 성씨가 신(申)씨인 것이다. 선생님들은 출석을 부를 때마다‘신문지’하고 이름을 부르다가 불쑥 고개를 들고는 야릇한 웃음으로 신문지 학생이 누구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안타까워하던 신문지 선생님 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으로 중학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께서 개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만석(萬石)은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이다. 만석은 곡식 일만 석 혹은 큰 재물을 뜻하니 아들이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친구 아버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은 가난하지만 아들만은 만석(萬石)이라고 새긴 큼지막한 문패를 내걸고 부족함 없이 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중학에 다닐 때 한문 시험이 끝난 다음 시간이었다. 폐병을 앓아 기침을 자주하던 깡마른 한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친구 만석을 앞으로 불러내어놓고는 덮어놓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질이 끝나자 친구는 돌아서며 씽긋 웃어 보였다. 선생님이 친구의 자리까지 따라와서는 친구의 공책에다 萬石(만석)이라고 크게 썼다.

“니 아버지가 너한테 지어준 이름은 ‘상용’이가 아니라 ‘만석(萬石)’이다”

그제야 매질의 이유를 알았다. 한문 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이름을 한자로 쓰시오.’였다. 그리고 앞에 앉은 친구의 이름이 ‘상용’이었다.

두어 달 전에 내 장인의 장례식에 문상을 와서 오랜만에 만난 만석이가 남기고간 명함에는 한자로 ‘萬石’이라는 이름이 크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James’라는 영어 이름도 적혀 있었다.
나는 오늘 아침 ‘소피아’라는 여인에게서 ‘제니’를 찾는 전화를 받고, 그런 사람은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제니’는 내 아내의 영어 이름이었다. 나는 아내의 영어 모임에 초대를 받아 내 영어 이름을 고민하고 있다. 이 이름 저 이름 사전에서 찾아 불러보지만 마음에 드는 영어이름이 없으니 고민이다. 거기에다 이런저런 카페에서는 본명이 아닌‘닉네임’이 판을 치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 세상 살아가기가 참 어지럽고 어렵다. 내 몸은 하나인데 본명에다 영어이름, 닉네임까지 있어야 하니 앞으로는 족보 만들기도 어렵게 되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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