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시작
아주 특별한 시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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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범/밀양 청도분교 교사
2012년 3월 2일, 오늘은 우리 학교 입학식. 그런데 참 특별한 입학식이다. 산골에 있는 우리 중학교가 산 너머 큰 학교의 분교장으로 통폐합된 첫 해 첫 날. 입학생은 단 한 명 혜영이(가명). 그리고 나는 오늘부터 이 아이의 담임이다.

오래된 건물 2층 동쪽 끝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아담한 강당겸 다목적실에 식장이 마련되었다. 정면 상단에는 여느 입학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입생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참석 학생은 3학년 줄에 5명, 2학년 줄에 2명, 그리고 신입생 줄에 1명. 내빈은 입학식 참석을 위해 고개를 넘어 온 본교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가까운 교회 목사님 한 분.

혜영이가 단상 앞으로 나와 입학생 대표이며 동시에 전체로서 선서를 했다. “나는 교칙을 준수하며 성실 근면한 자세로······선서합니다”. 계속해서 학교장 축사가 있었고, 재학생과 신입생이 모두 일어서 상호 인사를 나누는 순서가 이어졌다. 7명의 선배들과 1명의 신입생이 서로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입학식은 끝났다.

3학년 선배 중엔 혜영이의 오빠가 있었다. 평소에도 웃음이 많고 순박한 오빠 성민(가명)이는 무슨 생각 때문인지 중학생이 된 동생과 악수를 하면서도 싱글벙글이다. 동생과 같은 학교 학생이 된 사실이 좋았는지, 동생과 난생 처음 해 보는 악수가 재미있었는지.

혜영이는 작은 얼굴에 꽤 밝고 환한 아이였다. 첫날 아이의 씩씩한 모습이 왠지 계속 무거웠던 내 마음을 쓸어내리게 했다. 혜영이가 공부하게 될 1학년 교실에는 두 개의 책걸상이 놓여 있다. 작년에 혜영이의 바로 윗 선배 두 명이 공부를 했던 교실이다. 하나는 치웠어야 하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혜영이는 옆 교실 2학년 언니들에게 가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혼자인 교실이 많이 낯설고 어색했겠지. 이곳 아이들 대부분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런데 종례를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가 혼자 앉아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하루 일과를 지내고 이제 자신이 혼자이고 앞으로도 삼 년간 오늘처럼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절절한 서늘함이 밀려온 건 아닐까. 학생 수가 줄면서 우리 학교의 가장 취약점이 ‘친구들이 많이 없다’는 사실이 되어 버렸는데, 이제는 아예 전혀 없게 된 것이다. 애초 2명으로 배정되었던 신입생이 결국 한 명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가 들리면서부터 교직원 모두가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내게는 더욱 그랬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내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만히 이유를 물어보니 좀처럼 말이 없다. 속이 탔다. 몇 번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오빠와 다투었다고 한다. 아, 순간 속으로 밀려오는 안도감. 입학 첫날부터 오빠와 싸웠다고 하는데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다니…. 학급 인원이 30명 이상인 학교의 담임교사들이 지금의 내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조금 힘이 들어간 음성으로 짐짓 담임교사로서의 위엄을 가다듬어 다툰 이유가 뭐냐고 하니 혜영이는 훌쩍이느라 말을 못하고, 교무실로 성민이를 불러 물으니 동생이 자기 말을 안 들었단다. 집에서도 한 번씩 자기 말을 잘 안 듣고 대들기도 한다며 투정이다.

혜영이를 잘 달래고, 성민이도 동생과 잘 지내도록 타일러 보내면서 산골 분교장의 특별한 입학식 날이, 중학생이 된 유일한 우리 반 아이 혜영이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아이가 이 곳에서 비록 혼자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중학교 과정을 보내며 아름다운 젊은이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혜영이에게도, 내게도 아주 특별한 시작의 날이었다.

아직은 황량한 들녘 가운데 텅 빈 운동장 너머로 까치 한 마리가 나무를 옮겨가며 가만히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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