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와 LH간 소통의 창구가 되겠다
진주와 LH간 소통의 창구가 되겠다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5.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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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수 주택관리공단 감사

▲ 김권수 주택관리공단 감사는 본지 황인태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LH공사 계열사 간부로서 진주에 오게 돼 있는 LH공사와 계열사들이 진주에 잘 정착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권수 주택관리공단 감사는 “LH 계열사 간부로서 LH와 관련계열사들이 진주에 잘 내려오고 진주에 내려와서도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진주와 LH간 소통의 창구가 되겠다”고 밝혔다.
7일 김 감사는 본지 황인태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LH계열사 간부 회의와 공식 비공식 만남등을 통해 진주시민의 뜻을 잘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택관리공단은 LH공사와 함께 2014년 진주에 오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현재 공단은 부지를 마련한 상태이며 아직 사옥의 건축은 시작하지 않은 단계이다.
김권수 감사는 지난달 2일부터 이 회사의 감사로 일하고 있으며 공단은 LH공사가 100% 출자한 LH계열회사이다. 공단은 LH가 시공한 임대주택 관리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회사로서 2200명의 직원이 전국의 25만호의 임대아파트와 75만 명의 입주민을 관리하고 있다. 김 감사는 “공단이 LH공사 계열사로서 LH공사 간부들과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고 밝히고는 “이런 공식적인 자리뿐 아니라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해서도 진주시민가 LH공사 및 계열사 간에 소통이 잘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사는 특히 본지 대담을 통해 자신을 키워준 진주시민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공단을 위해 일하겠으며 진주시민과 LH가 잘 화합할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1988년 하순봉 전의원의 선거운동원으로 정치에 인연을 맺은 김 감사는 14년 동안 하순봉 전의원을 보좌했으며 2002년 경남도 도의원을 역임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진주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주택관리공단이란 회사의 성격이 무엇인가.
-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한 부서였다가 1998년 분리된 회사이다. LH공사가 100% 출자한 회사이다. LH공사 계열사로 보면 된다.
△어디에 있나.
-경기도 수원에 있다.
△무엇하는 회사이냐
-LH가 건축한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회사이다. 쉽게 말하면 LH가 지은 아파트 관리업무를 하는 회사인데 임대주택만 관리하고 있다. 임대주택에는 영구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의 세 종류가 있다. 이들을 관리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전국적으로 관리하나
-그렇다.
△관리하는 아파트가 몇 채나 되나.
-아파트 25만호에 75만명의 입주자를 관리하고 있다.
△진주에도 관리하는 아파트가 있나.
-가좌동 주공아파트와 평거2 주공아파트등 2곳이 있다.
△직원은 몇 명이냐
-본사와 현장을 합쳐 2200명이다. 현장은 각 지역마다 임대아파트가 있어 이를 관리하는 인력이다.
△이 회사의 감사로 일하고 있는데 언제부터 일했나.
-2012년 4월 2일 부터이다.
△주택관리하고는 인연이 없는 경력인데 어떻게 감사가 됐나
-감사라는 직책은 회사의 부정을 감시하는 업무이다. 따라서 굳이 주택관련 전문지식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래도 낙하산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나.
-낙하산은 아니다. 공채를 통해 합격했다.
△공채를 어떻게 했나.
-공채 채용공고를 보고 서류심사를 했으며 서류심사에 통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거쳤다. 3배수에 들어갔고 면접을 통해 2배수로 압축해 공직심사를 거쳐 임명됐다.
△감사로 선임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도의원 할 때 행정사무감사도 해봤고 특히 경남개발공사가 건축한 임대아파트 감사경험이 어필한 것 같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것은 처음인가.
-그렇다.
△감회가 특별하겠다.
-오랫동안 공직을 준비했다. 그런데 기회가 없었다. 마침 공직에 근무할 기회가 생겨 첫사랑을 만난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참으로 공직을 할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 진주시민을 위한 봉사는 아니지만 저를 키워준 진주시민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감사의 할 일이 많나.
-감사 및에 감사실이 있다. 직원들의 일을 감시 감독하는 부서이다. 전국에 현장이 310군데이다. 전국으로 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자세로 감사로서 일할 것이냐
-우리 회사는 임대주택 관리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국가 공복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우리 국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복지를 담당하는 일이다. 우리가 잘해야 입주민들, 우리 국민 중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복지가 향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국민들의 복지증진이 우리 손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일하겠다.
△주택관리공단도 진주 혁신도시에 오는 회사이냐
-그렇다. 원래는 2012년, 올해 오게 돼 있었다. 그런데 LH공사와 일정을 맞추느라 2014년에 진주에 오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었다.
△몇 명이 오나.
-본사 인원 100여명 중에 60~70명 정도 오게 될 것 같다.
△감사임기가 언제까지인가.
-2015년 3월말까지이다.
△그러면 진주에 오는 일을 책임지는 감사가 되는 셈인가.
-그렇다.

“오랫동안 공직을 준비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진주시민을 위한 봉사는 아니지만 저의 뜻을 실천할 작은 터전을 마련했다. 진주시민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회사의 분위기는 어떻던가. 진주에 오고 싶어 하던가.
-사실 혁신도시에 오는 11개 기관 모두 가능하면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정확한 심정이다. 그래서 제가 진주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런다. 제 역할이 주택관리공단이 진주에 잘 정착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중간에 감사가 바뀔 수도 있나.
-법적으로야 임기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일은 법적으로만 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감사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권이 야당으로 바뀌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다. 법적으로야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버티어도 되지만 치사한 행위들을 하면 그만둘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감사 자리를 오래 하려면 정권이 야당에 넘어가면 안 되겠다.
-그런 셈이다.
△LH의 자회사이니 LH간부들도 자주 만나겠다.
-그렇다. LH 이지송사장을 비롯하여 간부들을 종종 만난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LH 간부들을 잘 사귀어 놓아야 겠다.
-그러려고 한다. 이지송 사장은 올 9월이 임기여서 이제 종반을 맞고 있고 나머지 간부들은 대개 LH에서 큰 사람들이라 계속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주 관련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제 역할은 물론 주택관리공단 감사이지만 제가 진주 사람이니 LH와 계열사 사람들이 진주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하는 일도 하고 있다.
△최근 노사협상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사협상은 감사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회사의 일이기 때문에 노조간부들을 만나서 서로간에 소통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는 것은 결국 서로 잘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그렇다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는 게 제 평소 지론이다. 허심탄회하게 자주 만나서 이야기 하다보면 서로 통한다. 그래서 감사로서 제일은 아니지만 제가 그쪽에는 조금 소질이 있어서 노조간부들을 만나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지금까지 쭉 정치인으로 살았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86년 군대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농대 학생회장을 하고 있을 때인데 당시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이었던 하순봉 전의원이 찾아왔다. 하 전의원과는 처음 인연이었다. 당시 하 전의원은 노태우 대통령 선거 때문에 왔었다. 대학생 선거운동을 맡아달라고 왔었다.
△그래서 선거운동 했었나.
-열심히 도왔다.
△그러고는 어떤 일을 했나.
-저는 다시 학교에 다녔고 88년, 4학년 때인데 하순봉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아왔더라. 국회의원 선거에서 학생팀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 팀을 이끌게 됐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하 전의원은 낙선을 했다.
△그럼 인연이 끝났나.
-그게 아니다. 하 전의원이 낙선해서 저는 창원에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89년 초에 하 전의원이 다시 찾아왔다. 하 전의원이 정식으로 다시 한번 해보자, 라고  제안을 하더라. 그래서 짐을 싸들고 진주에 왔다. 아내는 당시 진해에 있는 학교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여서 저 혼자 진주로 왔다.
△다시 와서 무슨 일을 했나.
-진주에 와서 집도 없고 또 활동도 불편하고 해서 하순봉 전 의원 아파트의 문간방에서 하 전의원과 함께 살았다.
△완전히 머슴을 살았네
-그런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하 전의원과 진주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소위 ‘상갓집 개’라는 용어가 생긴 그 일인가.
-그렇다. 하루에 13곳의 상가를 간 적도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다녔다. 별보고 출근해 별보고 퇴근하는 게 일상사였다. 그 정도로 죽을 각오를 하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을 정도이다.
△그러고서 당선되었나.
-그렇다. 하 전의원이 92년 선거부터 내리 3선을 했다.
△당시 맡은 업무는 무엇이었나.
-처음에는 지구당 조직부장을 했고 나중에는 지역 보좌관을 했다.
△도의원을 한 것은 언제인가.
-2002년이다.
△10년을 모신 후 도의원이 됐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늦게 했다.
-그런 셈이다.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니 하 전의원도 그렇게 도의원을 주어야 겠다, 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는 아이 젖을 주는 건데 저는 잘 울지를 못하는 성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 섞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도 든다.
△후회가 되나.
-그렇지는 않다. 당시는 민원이 오면 밤에 자다가도 뛰어나와 미원인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하기 위해 다녔다. 전화기 끄고 자버리면 되지만 성격도 그렇지 않고 당시는 그래서는 안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한 개의 민원이라도 더 해결하려고 말 그대로 밤새워 일한 적이 부지기수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다. 요즈음 사람들은 시켜도 그렇게 못한다. 당시는 윗사람이 시키나 안 시키나 그렇게 하는 건줄 알고 목숨 걸고 했다. 그게 우리를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은 없나.
-어차피 이렇게 살았는데 뭐....
△앞으로 정치를 계속할 건가.
-지난번 시장 선거 끝나고 이제 끝내야 겠다, 고 생각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저도 안 되는 선거인줄 알았다. 그러나 빠져나오지 못해서 완주하고 말았다. 도저히 제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정말, 정말 끝내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나.
-선거 끝나고 한참 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저를 도와준 한 어른이 저를 보자고 하시더라. 그리고는 네가 50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이것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나, 라고 물으시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이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제가 갈 길이 없더라. 그래서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정치를 하고 나서 하순봉 전의원과의 인연도 그렇지만 최구식 의원과도 참 징한 인연인데.
-그렇다. 말 그대로 애증(愛憎)의 관계다. 속으로는 밉고 그런 적이 많지만 성격상 품고 자시고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친구끼리 무슨... 최 의원도 마음속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역량도 있고 잘 할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 꺽였다. 
△이번 선거는 적진에서 일했는 데 끝나고 통화는 했나.
-못했다. 친구니까 조만간 만나서 어루만질 수 있고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오랜만에 언론을 통해 진주시민, 경남도민을 만난다. 인사라도 하시라.
-제가 평생 소원이 진주시민의 종이 되어보겠다는 결심으로 살았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비록 진주시민을 위한 봉사는 아니지만 제 뜻을 실천해 볼 작은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감사란 직책을 떠나서 제가 봉사하는 회사가 잘되고 종업원이 잘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또 LH 계열사 간부로서 LH와 관련 계열사들이 진주에 잘 내려오고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진주와 LH간의 소통을 원할히 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를 키워준 진주시민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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