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산 장유사
불모산 장유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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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길/시인
AD 42년에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은 6년 뒤 인도 아유타이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들인다. 기록에 의하면 허황옥은 중국 보주(寶州) 지금의 쓰촨성에서 육로, 뱃길을 거쳐 진해 용원에 도착 김해까지 온 것으로 되어있다.

쓰촨성은 1976년 대지진이 일어나 약 25만명이 사망한 곳으로 펑사오강 감독의 ‘대지진’이란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잔잔한 감동과 지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 곳이다.

북인도 아유타이국이 전쟁에서 패해 지배계급과 유민들이 중국 보주로 이동하였는데 허황옥도 이 때 중국으로 건너온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허황옥이 어릴 때 부르던 노래라 한다. 아유타이국에서 중국 보주로 이주할 때 불렀던 이별의 노래가 지금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고유의 노래로 자리잡은 것은 아이러니다.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그의 오빠 허보옥이 같이 왔다. 그가 이 땅에 불교를 처음으로 뿌리내리게 한 사람으로 장유화상이다.

김해 장유 대청리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불모산 용지봉 아래에 작은 사찰 하나가 나타난다. ‘장유사’다. 김해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로 장유화상 이 곳에 암자를 지어 불교를 최초로 전파하기 시작한 곳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곳에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고 전한다.

허황옥은 김수로왕에게 시집 와 아들 열명과 딸 하나를 낳는다. 첫째 아들 장자는 수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거등왕이고, 둘째 셋째는 허황옥의 성을 쫓아 허씨 성을 받았다. 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는 같은 뿌리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외삼촌을 따라 출가한다. 허보옥은 조카 일곱을 데리고 불모산 기슭에서 수행을 계속 하는데 아들이 보고 싶은 허황후가 자주 장유암에 들리니 수행에 방해받는다 하여 멀리 지리산 반야봉(하동 화개 의신골) 아래 칠불암으로 자리를 옮겨 일곱왕자를 득불 시킨다.

사월은 불자의 달, 사월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9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불교의 어머니의 산 불모산 장유사와 창원 곰절로 일컬어지는 성주사로 초파일 삼사 순례를 한 번 하면 어떨까 권하고 싶다. 불교의 진한 자취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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