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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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
오월은 예부터 사랑이 가득 넘치는 계절이다. 동시에 모든 만물이 서로를 끝없이 사랑하고 싶은 시기이기도 하다. 경로와 효친의 사랑, 어린이에 대한 맑디맑은 물빛사랑, 더욱이 가정에서나, 노동현장에서도 모두가 진실한 사랑을 실천해온 것 같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으리라.

말하자면 우리 주변은 언젠가부터 환경에 대한 끝없는 파괴, 가족제도의 동요 그리고 정말 요지부동했던 인간사이의 애틋한 신뢰감과 절조조차 그 붕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의 우리는 총체적으로 사랑과 나눔에 매우 인색함으로써 지극히 고립되고 삭막한 생활을 매우 어렵게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종말적 현실을 계속 방치 할 수는 없다. 보다 빨리 근본적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오월을 맞은 지금 우리는 옛날의 슬기로운 성인과 현자들이 남긴 그들의 소중한 고전으로부터 상당부분 퇴조되고 퇴색되어 이제 거의 바닥난 원초적 그 사랑의 기운과 샘물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오월의 상징적 사랑인 효심과 경로와 관련된 한 고사(故事)를 인용함으로써 오늘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 같은 초록의 신선한 사랑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그 고사는 다름 아닌 풍수지탄(風樹之嘆)의 사연이다. 중국의 고전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곡성의 장본인은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묻자 울음을 그친 고어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에게는 세 가지 잘못한 일이 있습니다. 젊어서 집을 나가 공부하고 제후들을 찾아다니다가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 보니 양친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저의 뜻을 지나치게 고상히 하다 보니 군주를 섬기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친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으나 점차 관계를 소원히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한번 떠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고,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하직할까 합니다.” 말을 마친 후 고어는 자리에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말라 죽었다.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 만한 일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 들은 제자들은 깊은 감동과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스승 공자를 떠나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 열세명이었다.

이 글 속에서 우리는 나무의 그 슬픈 탄식을 듣고만 있겠는가 아니면, 큰 감동과 충격만을 느끼고 있겠는가 하여 다시 한 번 찬란한 오월의 이 계절에 우리는 정말 진실한 사랑과 효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재인식하고 기필코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실 효(孝)라는 문자는 원래 ‘자식이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풀이 되어 있다. 동시에 서양에서의 효(孝)의 의미는 일찍부터 ‘Filial piety, 즉 인간의 이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혈연상의 도리’로 정의 되고 있는 바, 어쩌면 우리의 그것 보다 훨씬 그 의미가 절실하고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적이고, 필연적인 도리인 바 그것에 대한 정의(正義)가 지극히 단순하여 ‘효도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만 기술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옛부터 ‘효성이 매우 지극했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는 烏鳥私情(오조사정), 反哺之孝(반포지효)가 있는데 그 의미는 “까마귀들도 남몰래 효행을 실천해 왔는데, 그 모습은 에미 까마귀가 어린 새끼 까마귀를 잘 키우기 위해 매우 거친 먹이를 구하여 운반하는 도중에 정말 힘들게 반복해서 그 먹이를 씹어서 매우 부드럽게 만든 후에 새끼 까마귀에게 먹여준다” 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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