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간다는 것은
길을 간다는 것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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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옥/작가ㆍ약사
스승의 날이 지났다. 선생(先生)이란 조금 먼저 태어났으므로 먼저 길을 가고,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을 일러주는 사람이 아닌가.

“선생님, 저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어느 해던가 스승의 날에, 제자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길을 잃었을까. 아니 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음치처럼 길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적지도 표지판도 선명한 도로에서도 꼭 엉뚱한 쪽으로 접어드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는 늙은 제자에게 내 어릴 적 얘기를 하나 해주었다. 초행길에조차 길을 잘 잃지 않는 나로서는 참으로 드문 경험인 셈이다.

열두 살이 되던 해 설 무렵 어머니를 따라 고성에 있는 문수암에 갔었다. 하루를 묵고 하산하는 길. 어머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저만치 뒤에서 오고 계셨다. 명절을 명찰에서 지낸 사람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섞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으므로 앞서가도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어느 순간, 사위가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걸음을 멈추고 귀기울여보았지만 나뭇가지에서 잔설 떨어져 내리는 소리만 간혹 날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공포가 나를 옥죄었고 오슬오슬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길을 나설 때 어머니가 감아주셨던 목도리를 잘 여몄다. 그리고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되돌아 올라가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거긴 길이 아닌 듯했지만 어쨌든 등성이를 타고 반대편으로 가려고 애썼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길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위로 위로만 오르던 내가 어쩌다, 아니 참으로 다행스럽게, 산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저 멀리 도로가 나 있고 낯익은 옥빛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옥빛, 어머니가 두르신 목도리의 빛깔이 아니던가.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어머니는 내가 먼저 내려간 줄 아시고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가실 텐데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큰댁까지 걸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외치며 무작정 옥빛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는 게 아니라 거의 굴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로는 산을 막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뒤돌아보게 되었는데, 의당 먼저 내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아이가 산중턱에서 고함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냥 거기 있으라고, 엄마가 가겠다고 소리쳤지만 멀쩡한 길을 두고 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게 다 보였다고 한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산 아래까지 들렸을 정도니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던 것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일을 상기할 때마다 오싹 오싹 떨리고,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멀쩡히 잘 가던 길을 회의하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길을 간다는 것이, 더구나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이 누군들 두렵지 않을까. 누구나 두렵고 불안하고, 그리고 문득문득 회의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길을 나섰다면, 그리고 그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면 터벅터벅 묵묵히 그저 길대로 가야 한다. 자꾸 돌아보거나 곁눈질하거나, 혹은 너무 앞서가서는 안 된다.

그때 내가 잠시 후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 것을 믿었다면 그리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가기로 했던 길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애당초 길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고 따라가기, 앞서 기다려주기. 길을 간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누군가 함께 간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길을 간다는 것, 그 지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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