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 대하여
뿌리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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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시인
야트막한 산과 인접해 있는 시골집 마당은 며칠만 손을 대지 않으면 산과 가까운 쪽은 풀들의 땅이 된다. 산에서 날아온 듯한 키 큰 풀과 너무 흔해 밥상에 올리지 않는 돌나물, 민들레, 이름을 알 수 없는 넝쿨풀에서 납작 엎드린 풀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마당은 생활 영역이니 풀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쉬운 큰 풀을 뽑고 작은 풀을 뽑는다. 단순한 풀 뽑는 작업을 통해서도 자연의 순리나 생태를 알게 된다. 키가 크고 좀 억센 풀은 뿌리가 굵고 튼튼하지만 쑥 뽑혀 나온다. 뿌리에 붙어 나오는 흙이 그리 많지는 않다. 납작하게 엎드린 작은 풀들은 생긴 모습과는 달리 뽑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손에 잘 잡혀지지 않을 뿐더러 어렵사리 뽑아보면 뿌리가 쥐고 있는 흙이 어찌나 많은지 몸집의 몇 배다. 뿌리도 몸피만큼 가늘고 여린 것이 흙을 움켜쥐고 있는 면적은 제 몸보다 훨씬 넓다. 쥔 힘이 세어 흙이 쉽게 털리지도 않는다. 그런 흙더미 속에는 지렁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제 집이라 여겼던 풀뿌리가 한 순간 들어 올려지자 놀라 꿈틀대는 걸 보면 참 미안해진다. 지렁이들은 이내 새집을 찾아가겠으나 풀들은 뽑히는 순간 죽음이다.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햇볕에 말리기 때문이다.

잡풀이라 이름 붙은 녀석들은 번식력이 강하다. 납작 풀이 제 몸보다 몇 배나 넓은 면적의 뿌리를 내려 흙을 움켜쥐고 있는 까닭도 강한 생명력에서다. 인간에 뽑혀져 나갈 것을 본능으로 감지하는가 보다. 짧은 시간에 재빨리 뿌리를 내려 대를 잇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잡초는 인간의 끝없는 제거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런 반면, 내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뿌리가 있다. 지난겨울을 지나며 싹이 난 고구마를 둥근 접시에 물을 담아 키우고 있다. 잎이 쑥쑥 자라 줄기도 제법 늘어졌다. 녀석은 잎과 줄기만 키우는 게 아니다. 물속에서도 뿌리를 내고 있는데 정착하지 못하니 무성한 긴 뿌리를 접시 안에서 둥글리고 있다.

 새둥지처럼 돌돌 말린 뿌리를 본 순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땅에 내려 크고 튼실한 새끼들을 키워내야 하는 것을, 접시라는 작은 공간에 가둔 게 미안해졌다. 처음부터 볼거리로 키운 건 아니지만 흙에 심어줬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선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의 삶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뽑히고 고사되는 이들을 날마다 보고 듣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이들이 있다. 언론을 통해 숱하게 깨지고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높으신(?)분들의 질긴 생명력에 박수를 보내며 제대로 된 결실을 맺는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한다. 자리 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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