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다음 주 수요일에 있을 공연 이야기를 조금 해 볼 작정이었다. 기획과 연출을 담당하게 되면서 따르는 '만들어 내기'의 고충과 그에 따르는 의미 따위를 적어 내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까닭은 기고문을 쓸 때 항상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나의 습관에 있다. 한글파일을 새로이 만들 때 기고문의 제목에 따라 파일명을 적어 넣고는 그 다음에 날짜를 항상 같이 써 넣는. 오늘이 6월의 몇 번째 날인지 궁금해서 확인을 해 보니 스물다섯 번째다. 반공의 시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뭔가 각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남침으로 비롯된 내전,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6·25로 기억하고 있는 비극의 서막이 오른 날. 지금 시각이 04시 06분이니 61년 전 바로 이맘때 첫 포성이 울렸으리라. 그 포성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한다.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미 분단은 시작되어 완결되었다. 이 땅에 살고 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리 되어 버렸다. 전쟁의 경위 따위를 적어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문제는 휴전조인의 이해관계 당사국으로 남한 정부가 직접 서명을 한 일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1953년 7월 27일 미국과 북한, 중국 사이에 체결된 한국전 휴전협정의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이 협정의 정식명칭 중 어디에도 대한민국민주주의공화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한민국이 내전의 첫 포성이 지닌 이 엄청난 비극을 딛고 나의 눈앞에 우뚝 서 있다. "한강의 기적"을 거쳐서 "4대강의 기적"을 기대하는 하나의 희극으로.
그 우람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한없이 여려 보이는 한반도 남쪽의 모습은 도대체 뭔가. 한반도의 남쪽, 여전히 반쪽일 뿐이다. 또 다른 반쪽과는 그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OECD의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으쓱해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1991년을 기점으로 그 정치적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하는 "냉전"이 여전히 그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땅.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땅. 가엾은 땅이요, 그 땅을 밟고 있는 나 또한 가엾기 그지없다. 두 쪽으로 나뉜 이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이리 애처롭다면, 두 쪽으로 나뉜 이 땅이 계속 나뉜 채로 있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더 애처로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그들이 "역사",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리라.
흔히들 말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하지만, 역사는 다만 "역사가 망각될 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역사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배제시킬 때"에만 되풀이 될 뿐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1년이 지난 오늘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이바구"다.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